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 아름다운 퇴장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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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 아름다운 퇴장을 꿈꾸며
  • 관리자
  • 승인 2018.09.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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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 ㅣ 조휴정(수현, 강남교당) KBS1 라디오 ‘박종훈의 경제쇼’연출

최희준의 '하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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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강릉의 어느 식당에서 봤다며 글을 하나 보내줬습니다. 부모와 자식을 대하는 우리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한 '허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요, 제법 긴 글에서 몇 대목만 소개해보겠습니다.


“부생모유 그 은혜는 태산보다 높고 큰데 청춘남녀 많다지만 효자효부 안보이네. 과자봉지 들고 와서 아이 손에 쥐어주나 부모위해 고기 한 근 사올 줄은 모르도다. 열 자식을 키운 부모 하나같이 키웠건만 열 자식은 한부모를 귀찮스레 여겨지네. 자식위해 쓰는 돈은 아낌없이 쓰건 만은 부모위해 쓰는 돈은 하나둘씩 따져보네”


이런 걸 요즘말로 '웃프다(웃기지만 슬프다는 의미)'고 하나요? 아직도 효자 효부를 바라다니 꽤 낭만적이다 싶기도 하고 이 글을 쓰신 분도 자식일 때는 몰랐던 것을 늙고 나서야 깨달았을 겁니다. 저도 이기적인 자식이었기에 효도를 바라는 건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오십견으로 오른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면서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왜 우리 부모는 나만 보면 맨 날 어디아프다, 뭐가 힘들다'는 말만 하실까, 원망을 많이 했는데 이제야 사무치게 죄송한 겁니다. 제가 아파보니 그때 우리 부모님도 냉정한 나에게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욱신거리는 오른팔을 붙잡고 아파서 눈물이 나는 게 부모님께 죄송해서 눈물콧물이 흐릅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 참 덧없고 허무합니다. 최희준의 명곡 '하숙생(김호길 작곡 김석야 작사, 1966년)'의 가사처럼 말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그렇죠. 돈도 자식도 명예도 다 구름같죠. 집착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어리석고 어둡게 하는 것은 다만 애착과 탐착이니라”는 법문이 뼈저리게 와 닿습니다. 아직도 내공이 부족해서 말만 이렇게 하지 괴로움이 한가득 인데요, 저 나름의 비상약은 갖고 있습니다. 바로'감사하는 마음'이죠. 감사하는 마음을 한웅큼씩 먹어야 집착도 없어지고 저 노래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을 받아들이게도 되더군요.


이 심오한 철학적 노래를 저는 대여섯 살 때부터 흥얼흥얼 부르고 다녔습니다. 최희준은 1960년대 최고의 가수였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목소리이기도 했으니까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흉내 내는 특유의 설렁설렁한 창법은 사실, 쉽지는 않은거죠. 물론, 그는 제 세대의 가수는 아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였죠. 그래서인지 지난달 8월 24일, 그의 부고를 듣고 뭔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단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아주 오래전의 가수지만 뭐랄까요,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이제 정말 마무리 되는구나 싶은 먹먹함이랄까요?


한국의 냇킹콜로 불리며 '하숙생', '팔도강산', '맨발의 청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진고개신사', '엄처시하', '나는 곰이다', '종점', '빛과 그림자'등의 히트 곡을 남긴 그의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정말 좋았습니다. 정장을 입은 신사 숙녀들의 예의바른 무도회장이 1960년대 흑백영화처럼 떠오르고 다시 못 올 순정의 시대를 담은 멜로디는 어찌나 달콤 하든지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시대를 함께했던 것도 행복이었습니다. 구름이 흘러가면 그 자리는 표시가 나지 않죠. 우리인생도 그럴 겁니다. 먹구름이 아닌 보기에도 사랑스러운 뭉게구름으로 예쁘게 사라지고 싶은데 이것도 욕심일까요? 새삼, 하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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