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정역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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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정역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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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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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 21 | 천지은 교도 (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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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막고 느닷없이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들이대는 이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생각해보니 길거리에서 만난 이들과 진지하게 '도(道)'를 논할 수 있다면 꽤 철학적인 세상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 애써 눈을 피하고 입을 굳게 다물고 걸음의 속도를 더해 낯선 구도자들을 뿌리친다. 무언가 귀찮은 것을 요구해 올 것이라는 막연한 종교적 피해의식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토착 사상기행을 하면서 거리의 구도자들이나 들먹이는 것으로 치부했던 도의 문제를 백여 년 전으로 되돌려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원불교사상만을 최고로 알고 지낸 내가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동학, 정역, 증산 등을 사상사적 측면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가운데 일부 김항에 의해 제시된 정역(正易)은 3천 년 동안 동양사상의 뿌리를 이룬 주나라 주역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한 새 시대의 역이라고들 한다. 정역이 주역을 넘어서는 대전환의 패러다임을 형성한 것은 아니다. 또한 정역이 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인증되거나 입증된 것도 아니다. 다만 조선 후기의 토착사상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정역을 연마하고 완성한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의 변두리 계룡산 자락에 있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이다. 계룡산 국사봉 아래 향적산방이 있다. 그리고 향적산방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작은 기도굴이 있었다.


이곳에서 50여 년 동안 '김일부의 정역'연구에 매진한 이가 학산 이정호다. 일부가 펴낸책『정역』이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 탓에 학산의 자료를 주로 참고했다. 학산을 통해 알게 된 정역은 한마디로 “후천시대는 자연, 인간,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시기”라고 요약된다. 따라서 천지가 변화해 이전투구와 상극의 갈등시대가 끝나는 '개벽'으로 상생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인과 군자가 되는 인간혁명과 사회개혁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남성이 여성을, 강국이 약소국을 억압하는 '억음존양'(抑陰尊陽, 음을 억압하고 양을 높임)의 차별시대가 '조양율음'(調陽律陰, 음과 양이 조율)의 화합시대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가 대결하고 민족과 민족이 투쟁하는 선천(구시대)에서 천하가 한 가족이 되는 대동세계로 변모하고 상하질서를 강조하는 봉건시대가 평등의 소통시대로 바뀐다는것이다.


구한말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탄생한 정역은 그야말로 개벽사상의 단초를 열어준 사상이었다. 그러니 정역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삶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나 문명운동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하는 짊문을 수없이 던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각각 자기 세계에만 갇혀서 바라본 진리와 사상의 문제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볼 것인가, 또 여전히 옛날 틀에 갇혀 있는 신들을 어떻게 소통하게 하고 혁명해내는가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일부가 향적산방에서 정역을 완성했다는 학산 이정호 선생의 의견에 대해 원광대 임병학 교수는 다른 견해를 펼치고 있다. 임 교수의 주장으로는 일부가 그곳을 '향적산방'이라고 이름 하지 않았으며, 정역은 논산시 양촌면 자택에서 완성했다는 것이다.

일부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토벌군을피해계룡산에잠시머물렀고, 그때 증산과 하루이틀 정도 만났다는 것이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추측으로 남아 신비화 되고 있는 일부의 생애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 사진 설명 : 거북바위 기도굴 - 계룡산 국사봉 향적산방 바로 옆에 있는 기도굴이다.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 아래 한두 사람 정도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요즘에도 산신께 기도를 올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늘과 땅의 운행을 느끼고, 홀로 수행하기에 좋은 영험한 곳이다. 거북바위 위에는 울창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마치 거북이가 나무를 등에 지고 천지를 떠도는 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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