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수양과 공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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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수양과 공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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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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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124)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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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정신수양의 목적」을 보면 “자기에게 있는 권리와 기능과 무력을 다하여 욕심만 채우려 하다가 결국은 가패 신망도 하며, 번민 망상과 분심 초려로 자포자기의 염세증도 나며, 혹은 신경 쇠약자도 되며, 혹은 실진자도 되며, 혹은 극도에 들어가 자살하는 사람까지도 있게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욕심이 충족되지 않으면 발생되는 현상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피해가 가며, 나아가 세상을 기피하거나 심신미약 또는 자살에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면역체계가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격입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본능에 공격성이 있다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상에 인간이 퍼지면 그 일대의 동식물들은 거의 멸종했다 합니다. 인간의 번창은 다른 생물들의 멸종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1·2차 세계대전 후 인간의 심리에 공격성이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심리에 있어 공격성의 존재를 밝힙니다. 그는 인간의 심리구조를 'id(본능)-ego(자아)-super ego(초자아)'로 구조하며, 이드에는 성적 본능인 '생의 본능'뿐만 아니라 '죽음충동'도 꿈틀거리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죽음충동은 무생물 같이 되고 싶은, 완전히 소멸되고 싶은 자기파괴충동으로, 이 에너지가 밖으로 표출되면 공격성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충동과 공격성은 같은 에너지로, 안으로 향하면 죽음충동이요 밖으로 향하면 파괴충동의 공격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죽음충동은 안으로는 돌멩이처럼 무생물이 되면 고통으로부터 편안해 질 것이라는 열반 추구이면서 밖으로는 파괴본능입니다. 소멸되지 않으면 생성될 수 없기에 소멸은 자연의 한 사이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멸이 파괴를 위한 파괴가 될 경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파괴본능의 대표적인 것이 전쟁과 약탈 그리고 자연파괴와 같은 공격성입니다.

인류는 이러한 공격성을 어떻게 다루냐에 있어 욕심통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한정된 것을 무한대로 누릴 수 없기에 한편으론 상호 욕심을 억제한 반면 다른 한편으론 남보다 더 가지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지배욕에 따라 다툼이 일고 억압과 폭력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욕심은 바라는 것이요 하고자 하는 것으로 공격성과 밀접합니다. 하고자 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알고자 하는 것도 공격성의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정전』「정신수양의 목적」에서 “유정물(有情物)은 배우지 아니하되 근본적으로 알아지는 것과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데, 최령한 사람은 보고 듣고 배우고 하여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 동물의 몇 배 이상이 된다.”하시며 “그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을 취하자면 예의 염치와 공정한 법칙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자기에게 있는 권리와 기능과 무력을 다하여 욕심만 채우려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에 대한 소태산의 분석이요 판단입니다. 특히 욕심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공격성에 대한 분석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히 높으며 인간은 이러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 목적을 이루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나 기능뿐만 아니라 무력까지 동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심에 내재된 공격성은 밖으로 분사되어 대립 쟁투 분쟁으로 표출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의 내부로 파고들어 자살까지 이른다는 것입니다. 상대도 갉아 먹지만 자신도 갉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류의 공격성을 잘 다루기 위해서라도 욕심대로 하려는 공격성을 제어해야 합니다. 공격성은 탐욕이나 약탈 같은 파괴적 힘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분발 같은 창조적인 긍정적 힘이기도합니다. 그러므로 탐욕의 공격성이 아니라 분발의 에너지로 전화시켜야 하며 특히 함께 공존하는 에너지로 사용해야 합니다. 소멸되려는 죽음충동의 에너지는 근본적으론 평온한 명상상태의 추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결국, 욕심의 충동에 끌려가지 않으면서 욕심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때문에 욕심 경계의 전반에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는 수양력이 절대적으로 요청됩니다. 소태산은 이러한 이유에 따라“천지만엽으로 벌여가는 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自主力)을 양성하자”는 정신수양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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