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하오면, 그 분이 어떠한 분이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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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오면, 그 분이 어떠한 분이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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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1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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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 25 | 천지은 교도 (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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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 선생은 곧 드물게 있는 선지자요 신인(神人)이라, 앞으로 우리 회상이 세상에 드러난 뒤에는 수운 선생과 함께 길이 받들고 기념하게 되리라.”(대종경 변의품 31장) 증산이 어떠한 분인지를 묻는 한 제자의 물음에 소태산 대종사는 이렇게 답했다.


증산 강일순이 태어난 신송마을은 정읍에서 덕천을 거쳐 황토현으로 가는 길에 신태인, 고부로 갈라지는 사거리 못미처 300m 지점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는 마을이다. 일명 '손바래기'라고 불린다. 마을 입구에 강증산 성지 푯말이 세워져 있고, 탄생지에는 '강증산상제강세지(姜甑山上帝降世地)'현판이 붙어 있다. 방안에는 증산의 영정과 주문인 태을주(太乙呪)가 걸려 있다는데, 내가 방문한 시간에는 이미 문이 닫혀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증산이 태어난 정읍은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한 마을에 증산교, 천도교, 기독교, 원불교도 있고, 고개 너머에는 암자도 있고, 굿당도 있다. 아마도 이 마을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사는 사람 가운데는 100여 년 사이에 각종교의 가르침을 모두 받아들인 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증산 강일순은 39세에 죽었다. 오늘날 의학의 발전에 비추어 보면 오래 살다 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39년은 파란만장한 시절이었다. 1894년에 동학혁명이 발발했을 당시 1871년생인 증산은 우리 나이로 24세였다. 혈기 있고, 감수성 예민하고, 정의감이 투철할 나이 아닌가. 이때 동학이 일어났다. 그는 동학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심정적으로 크게 동조한 상태였으리라 짐작된다.동학도들이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들에게 기관총으로 대량 학살을 당하고 뿔뿔이 흩어졌고, 살아남은 동학도들도 일본군 추적대에게 붙잡혀 처절하게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머리 좋고, 정의감 있는 청년이 이 기막힌 조국의 현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진정한 인재라면 시대를 아파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도 치료하고, 시대를 치료하고자 했을 것이다.

구한말 일본군에게 동학군이 처절하게 살육당하는 상황을 목격한 청년 증산은 권능(權能)을 얻기 위하여 김제 모악산(母岳山) 대원사(大院寺)의 산신각에 들어갔다. 이 산신각에서 물도 먹지 않고 죽기 살기로 단식기도를 한 끝에 증산은 엄청난 권능(權能)을 얻게 되었다. 그 권능은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예언으로 요약된다. 앞으로 우주시(宇宙時)가 변하면 역사시(歷史時)도 변하고, 남녀 간의 역할도 변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선천(先天) 5만 년 동안 남자가 여자를 억눌러왔으나, 후천이 개벽되는 시점에서부터는 여자가 득세할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였다. 여자가 득세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벌였다. 여러 사람이 모인 마당에 멍석을 깔고 증산 본인이 누운 다음에 부인인 고수부(高首婦)로 하여금 부엌칼을 들게 한 후 자신을 올라타서 그 부엌칼로 자신의 목을 찌르는 시늉을 하게 한 것이었다. '선천 5만 년 동안 남자에게 짓눌린 여자의 한을 이렇게 해서 대신 풀어라'는 행위예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신송마을은 조용했다. 증산의 생가처럼 생기가 빠져나가 버린, 늙어버린 마을의 고샅길로 저녁 햇살만 처연하도록 가득했다. 현재진행형이 아닌, 지금 여기의 삶을 담아내지 못하는 사상이며 종교는 백년을 견디지 못하고 폐허가 된다. 그것을 나는 증산이 태어난 마을에서 보았다.

# 사진 설명 : 증산 강일순 생가

전북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신송마을 438 - 증산은 아버지 강문회와 어머니 권양덕 사이에서 1871년 11월 1일 전북 고부군(현재 정읍시 덕천면)에서 태어났다.


2017년 10월 방문 당시에는 증산이 태어난 장소 옆에 있는 농가를 '강증산상제강세지'라고 하여 나름대로 꾸몄는데, 증산교의 교세를 보여주듯 허름하고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 최근에 증산이 태어난 본래 부지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원불교사상연구원 허남진 박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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