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놓고 싶지 않다는 욕심으로
단회 때 상시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교무님께서 진급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급 십계문은 어겨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계문을 어기게 되면 그 것이 계속 안 좋은 습관으로 변할뿐더러 다른 계문들을 줄줄이 달고 온다고 한다. 마치 쟁투를 하게 되면 악한 말은 웬만해서는 따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법회를 마치고 합창 공연을 하는 도중이었다. 오랜만에 군대 동기 녀석한테 문자가 왔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돈 좀 빌려달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상황이 어떻고 구구절절이 이야기하는데 뭐 이유야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돈이 없어서 5만원 빌려달란다. 일주일 안에 갚는다기에 '그래'하고 빌려줬다. 계문에 대해 회화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심교 간 금전을 여수하지 말며'를 어기게 되었다.
아주 가끔씩 어기게 되던 계문이었다. 빌려줄 때마다 교무님이 이야기 하신 것처럼 '없는 셈 치지'하며 빌려줬다. 늘 비상시를 위한 돈도 쟁여놓고 5만원이면 그리 큰돈도 아니었다. 받으면 받는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있나, 연을 끊자 하며 늘 까먹고 있다가 돌려받았다. 오늘은 이상하게 빌려주고 나서 마음이 매우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돈을 빌려줬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이 친구한테서는 정말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래도 군대에서 1년이나 넘게 같이 생활하며 고생했는데 정말 고작 5만원 때문에 연을 끊어야하나. 생활 하던 것 보면 안 갚을 것 같기도 하고, 다 때려 부수고 싶은 만큼 화나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기분 나쁜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동아리 방에서 혼자 저녁 심고를 모시고 이렇게 일기를 쓰니 좀 가라앉은 것 같다. 오늘 교무님께서 이야기해주신 걸 몸소 체험하니 더더욱 계문은 중요하게 다가왔다. 금전 여수를 하니 타인의 과실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진심(瞋心)이 올라왔다. 이런 진심은 인연을 놓고 싶지 않다는 욕심으로 인해 올라왔다. 조금만 더 화가 났다면 아마 악한 말을 했을 지도 모르고 원망하며 술이나 한잔 하고 잤을지도 모른다.
계문 하나를 어기면서 마음은 마음대로 요란해지고 번뇌는 번뇌대로 생겨만 갔다. 또 요란해진 마음은 새로운 계문을 어기기 위한 발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상시일기에 대한 보충수업까지 받게 되었지만 역시 경계를 직접 당해보아야 알게 되는 것 같다. 감사한 마음으로 자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