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명예 회복에 앞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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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명예 회복에 앞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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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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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여성인권운동가 별세, 주한 일본대사관 앞 영결식

8면) 김복동 할머니 (2).JPG

김복동 여성인권운동가의 장례가 진행된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한덕천 교구장과 서울교구 재가출가들이 천도축원을 올렸다.

국제사회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최초로 공개 고발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여성인권운동가가 1월28일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힘든 투병의 시간을 견뎌온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시민들이 빈소를 찾아 명복을 빌었다. 한덕천 서울교구장과 서울교구 재가출가 교도, 여성회 회원들은 1월30일 그의 장례가 치러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김복동 열반인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기원하는 성주와 심고를 올렸다.

김복동 여성인권운동가는 만 열네 살이 되던 해,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중국 광둥, 홍콩,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자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여성의 몸으로 견디기 힘든 고초를 당했다. 그의 삶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제작돼 일반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1992년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처음 고백하고,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참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등 여성인권운동가로서의 행보를 꿋꿋하게 이어갔다. 지난해 9월에는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할 정도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앞장섰다.

2월1일 서울역에서 출발해 일본대사관 앞까지 이어진 노제와 영결식에는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가 시민들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고 영로를 밝혔다. 그가 떠난 후,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현재 23명으로 밝혀졌다.

한편 교단에서는 경기인천교구가 해마다 연초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다수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나눔의집을 찾아 건강을 기원하는 새해 인사와 선물을 전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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