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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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공동체 
  • 관리자
  • 승인 2019.02.1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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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감수성up

소풍 가방 들고 봄나들이 가는 젊은 부부와 아이의 얼굴엔 방독면이 씌워지고, 데이트를 즐기다 뽀뽀할 타임에 방독면을 벗어야 하는 젊은 연인을 담은 포스터를 보며 먼 미래의 일일 거라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쓴 기억이 있다.

지난 1월14일 누군가가 서울롯데빌딩에서 찍은 사진 속에는 고층빌딩도, 질주하던 자동차들도, 도로 옆을 흐르던 한강도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초미세먼지 경보가 그 후로도 며칠간 지속됐다. 춥거나 바람이 불어야만 미세먼지 지수는 비로소 보통으로 내려갔다.


딱 1년 전 이맘때, 서울시는 미세먼지저감대책으로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무료'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당시 세금 낭비라는 뭇매에 박원순 시장은 '호흡공동체'라는 개념으로 받아쳤다. 그러면서 '정쟁'을 위한 시간 낭비보다는 대책을 위한 '협력'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대중교통 무료 정책에도 자동차 운행 수는 줄지 않았고, 교통난 해소의 기대감을 가졌던 시민들은 버스, 지하철 요금 몇 천원을 아끼느니 관성처럼 편리함을 택했다. 결국 정책시행자에게 대중은 오히려 '뭇매'를 안겨주었다. 시민들의 환경감수성이 정책을 넘어서지 못한 뼈아픈 결과였다.


오늘날 세계가 당면한 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니라 정치의 위기라고 일갈한 전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의 말에 명치끝이 뻐근하다. 얼마 전 국민여론조사에서 최우선 해결과제로 미세먼지가 꼽혔다. 정치권 최대이슈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가. 지난 11일 한국원자력산업회의가 개최한 '원자력계 신년인사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이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 미세먼지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허가를 받지도 않고 공사부터 시작한 신한울 3·4호기는 건설사를 고발해야 할 사안이지 공사재개를 이야기할 계제가 아니다. 같은 당 우원식 의원과 청와대의 반박이 뒤를 이었지만, 정부의 탈원전정책의 균열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여름 폭염으로 에어컨 등 냉방기 사용량이 늘어나자 예비전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가스발전소, 태양광 등 대체발전원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정책 폐기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정치공세가 이어진 것과 판박이다.

한국사회의 전력생산량은 소비에 비해 넘친다. 공급예비율이 30%가 넘고, 전력소비량이 적은 봄, 가을 새벽에는 전력예비율이 60~70%까지 치솟는다. 전력거래소가 지난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9월 설비예비율이 한때 83%를 찍기도 했다. 버리기 위한 전기를 생산하는 꼴이다. 핵발전과 석탄화력발전소 덕(?)에 세계에서 가장 값싼 전기요금을 누리는 대신 미세먼지와 방사능을 마시며 살아야 한다.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박병상 소장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에서 미세먼지는 한·중 합작품이며 “높은 굴뚝에서 황과 질소산화물을 연신 날리며 중국 동부 해안의 산업단지와 핵발전소를 지나는 미세먼지는 편서풍을 타고 산성비뿐 아니라 중금속과 방사성물질까지 몰고 한반도로 진출한다”고 개탄한다. 산업화에 열을 올리는 중국은 화력발전소도, 핵발전소도 멈출 의사가 없어 보이고, 자동차와 전기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 또한 죽음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머리카락의 수백분의 1에 불과한 초미세먼지를 막아주지 못하는 공기청정기, 마스크 광고는 불티나고 미세먼지를 피해 청정한 나라로의 여행을 권하는 광고문구에는 할 말을 잃는다.
태국 방콕에서는 구름에 화학약품을 뿌려 인공강우를 만들고 산불용 헬리콥터가 물을 뿌려 미세먼지를 씻어낸단다. 자연의 '경고'를 자연의 '정복'으로 맞서고 있는 꼴이다.
'석탄이냐? 핵발전이냐?'는 질문 자체가 모순이다. 탈핵, 탈석탄,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이 호흡공동체가 고민해야 할 미세먼지 대책이다.


인간의 탐·진·치가 종말을 향해 질주하는 시대, '미세먼지냐, 방사능이냐'의 불의한 선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참회의 사과나무라도 한그루씩 심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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