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해탈, 그 짜릿한 기쁨
상태바
생사해탈, 그 짜릿한 기쁨
  • 한울안신문
  • 승인 2019.02.21 21:02
  • 호수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배중환·원광디지털대학교 원불교학과 졸업생

나는 열두 살 여름방학 때 죽을 뻔했다. 만경강 상류 수중보 배수문 근처에서 수영 미숙으로 거의 죽기 직전에 이름도 모르는 어느 청년에 의해 구조됐다. 내가 쉰 살이 되었을 때 가장 친한 친구가 위암으로 죽었다. 그는 기독교 목사로서 전라남도 해남 오지 마을에서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봉사하던 사람이었다. 도대체 쉰이란 나이에 죽을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나는 왜 살았고 그는 왜 죽었을까? 생사는 무엇이며, 무슨 원리로 작동되고 있는가? 그동안 교당에서 들었던 육도사생이며 윤회며 영생을 떠올렸다. 나는 미친듯이 <대종경> 천도품과 전이창 종사의 <생사대도> 김중묵 종사의 <인과의 세계>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정신을 챙기기 위해 일원상서원문을 사경하기 시작했다. 사경하기 전에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오직 일원상 진리의 모습을 오득하고자 염원했다.

 

이렇게 5년여 동안 일심으로 매진해 일원상서원문 사경을 3,000회 마칠 무렵, 한순간 마음이 차분해지며 뭔가가 손에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단편적인 조각 지혜는 될지언정 일원상 진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진 않았다. 그때 어느 교무님의 추천으로 원광디지털대학교 원불교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곧바로 3학년에 편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배우는 과목마다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였다. 아침6시~저녁10시까지 일하기 때문에 밤12시~새벽2시까지 강의를 들어야 했다.

 

항상 잠이 부족했지만 머릿속에는 탐구의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과목마다 교수님의 강의는 열정적이고 진지했고, 하나하나 오득하는 기쁨은 마치 '목수가 잣대와 먹줄을 얻는 것'과도 같았다.

 

어느덧 졸업이 다가왔다. 그동안 배웠던 내용들을 살펴보고 점검해보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가상의 큰 원(圓)을 그렸다. 그 원 속에 나의 모습, 어릴 적 추억도 넣었다. 학창 시절, 군대 시절, 회사 시설도 넣고 인연들도 넣어보았다. 전 인류를 넣어도 다 들어갔다. 과거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다 넣어도 빈 공간이 남았다. 이제는 전 우주의 삼라만상을 넣어보았다. 또 다 들어간다. 대단한 원이다. 원 안을 들여다보니 새까만 점들이 항하사보다 많았다. 그 원을 바람개비로 생각하고 돌려보니 점점 빨라질수록 형체도 없고 색상도 없어졌다. 빈 공간만 남았다. 이윽고 검은 것은 완전히 없어지고 흰 것만 빈 공간에 남아있었다.

 

원불교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훈련을 하는 곳이며, 생사는 생멸이 아니고 변화이며, 작동원리는 십이인연임을 알게 됐다. 또한 생사해탈을 넘어 십이인연을 임의로 궁글리는 생사자유가 있음도 알았다.

 

 

Tag
#111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