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소크라테스를 응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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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소크라테스를 응원하자!
  • 이여진 교도
  • 승인 2019.02.27 02:04
  • 호수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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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기원전 399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 아고라 광장 옆에 있는 법정이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아테네의 기인(奇人)인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많은 배심원과 방청인들이 보는 가운데 키 작고 못생긴 소크라테스가 피고발인석에 외롭게 앉아 있다.

고발자들이 그를 법정에 세운 이유는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아테네는 올림포스 12신을 비롯한 많은 신을 인정한 다신교 국가이자 외국인들의 출입이 잦았던 상업 도시였다. 이런 개방적인 사회에서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고발도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억지로 그의 철학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하거나 더욱이 나쁜 짓을 하라고 시킨 적이 없다. 다만 그는 델포이 신전에 쓰여 있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를 인용하면서 무지를 깨닫고 진리 앞에 겸손한 자세로 늘 성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변했던 것이다. 이런 그를 곁에서 지켜보던 많은 젊은이는 그의 훌륭한 언변에 감동해 찬사를 보내고, 그를 흉내 냈을 뿐이다.

 

그의 나이 일흔,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보면, 오늘날 100살이 넘는 나이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아 어쩌면 자연사할 수도 있는 노인을 굳이 재판정에 세운 진짜 이유는 그가 아테네 몰락의 주된 원인을 민주정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요리사와 의사의 비유를 들어 아테네 민주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병든 아이가 낫기 위해서는 쓴 약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사리 분별력이 부족한 아이는 의사의 처방을 거부하고 요리사의 달콤한 음식에 넘어간다. 마치 민주정에서 시민은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고 요리사의 꼬임에 넘어가는 어린애이며, 정치인은 병든 아이를 맛있는 음식으로 유인하는 요리사와 같다는 것이다.

당시 아테네 정치인들은 어리석은 시민들을 선동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었다. 포퓰리즘이라는 말조차 없던 그 시대에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의 이러한 문제점을 감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입바른 소리를 일삼는 소크라테스가 정치인들에게는 단지 눈엣가시였을 뿐이다. 따라서 그를 사형에 처함으로써 민주정을 반대하는 무리에게 일침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무지몽매했던 아테네 시민들은 이에 부화뇌동하면서 그를 악인으로 몰아세우고 사형에 찬성표를 던진다.

정신적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외롭게 재판받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젊은 플라톤은 당시 정치계에 강한 반감과 회의를 느낀다. 그리고 다수와 힘겹게 싸우는 외로운 스승의 재판 과정을 그의 대화편 에 담는다.

의 마지막 문장,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과 사형을 선고한 배심원들을 향해 던지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재판에서 진 왕따, 소크라테스가 훗날 서양 철학사에서 찬연히 빛을 발할 것을 스스로 예고한다.

“여러분,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여러분은 집으로, 나는 죽으러 가겠지요. 하지만 누가 더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단지 신만이 아실 겁니다.”

다수의 힘에 의한 소수의 억압, 대중 인기 영합주의와 여론의 호도를 통한 포퓰리즘은 단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자신이 몸담은 조직이나 사회에서 여전히 외로운 소크라테스들이 있을 것이다. 다수와 다른 시각을 지닌 그들을 경원시할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봄 직하지 않은가? 때로는 그들의 외로운 행보를 응원하고 곁에서 따뜻하게 위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들 중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또 다른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필진) 한울안칼럼-이여진.jpg

이여진 교도 / 강남교당(서울교구 교사회 회장)

[3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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