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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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
  • 이태은 교도
  • 승인 2019.05.01 13:01
  • 호수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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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새들의 고향 미드웨이 섬. 날개를 힘껏 펼치면 3~4미터까지 뻗는 ‘알바트로스’의 최대 번식지이다.

크리스 조던의 카메라 앵글은 죽은 새의 배를 가득 채운 플라스틱을 잔인하게 잡아낸다. 본래 모습을 알 수 없게 부서진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 마트 이름이 새겨진 비닐조각들, 단추와 병뚜껑에 이어 급기야 라이터, 칫솔까지 나온다. 숨 쉴 틈조차 없이 꽉 들어찬 알바트로스의 배속엔 놀랍게도 미드웨이 섬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쓰고 버린 플라스틱과 비닐들로 가득하다. 또 한 마리의 새끼 알바트로스 몸에서는 얽히고 설킨 낚싯줄이 한 손 가득 나온다. 카메라는 섬 한 편에 버려진 폐선을 함께 잡아낸다.

축 늘어진 새끼 알바트로스와 쓰레기를 움켜쥔 채 오열하던 크리스 조던은 플라스틱과 비닐들로 둥근 무덤을 만들고 참회와 애도의 기도를 올린다.

환경생태예술작가 크리스 조던은 2008년 미드웨이 섬에 새를 찍으러 갔다가 죽어 있는 알바트로스들을 발견하고, 8년간 섬을 오가며 그들의 일생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영화 ‘알바트로스’는 시리도록 아름답고 처절하게 잔인한 작품이다. 지난 2월22일부터 5월5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크리스 조던 전시회 ‘아름다움 너머: 자이어의 메시지’ 연작 작품들에는 알바트로스의 죽음과 연관된 의미심장한 숫자가 매겨져 있다.

‘자이어’는 북태평양 한류를 뜻한다. 북태평양 한류는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한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하고, 이로 인해 생긴 거대한 플라스틱섬이 자이어이다.

‘240만, 5만, 1백만, 32만, 24만, 6만7천, 18만3천, 5만, 114만’.

매시간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파운드 무게를 추정한 240만 개의 플라스틱, 전세계 바다에 떠다니는 5만 개의 플라스틱 조각(1평방마일), 미국 내 모든 항공기에서 6시간마다 사용되는 1백만 개의 플라스틱 컵, 주거용 전기의 비효율적 사용으로 인해 매 분마다 미국에서 낭비되는 전기 32만kwh, 전 세계에서 10초마다 소비되는 24만 개의 비닐봉투, 미국 전역 핵발전소 104곳 임시 저장수조에 쌓인 고준위핵폐기물 6만7천톤, 매일 미국에서 농약으로 죽어가는 18만3천 마리의 새, 전 세계 해양을 떠다니는 5만 개의 플라스틱조각, 매시간 미국 슈퍼마켓에서 사용하는 114만 개의 종이가방 숫자들이다.

미드웨이 섬 주변을 떠도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알바트로스의 먹이가 되고 그것은 다시 제 새끼에게로 전달된다. 카메라는 어미 입속에서 전달되는 먹이에 잔뜩 들어있는 단추며, 비닐이며, 물병 뚜껑들을 선명히 잡아낸다. 백사장에서 플라스틱을 고통스럽게 게워내는 알바트로스들, 활공만으로도 수십 킬로미터를 간다는 알바트르스가 얼마 날지 못하고 바다에 빠져 해안가로 밀려온 사진의 제목은 ‘자이어’다. 자이어와 알바트로스의 죽음은 동의어가 된다.

이제 지구에 살고 있는 종으로서 인간의 중요한 과업은 ‘지구를 기품 있게 떠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던 심리학자 짐 코플린의 이야기가 맴돈다. 무려 25년 전 친구 코플린과 나눈 이야기를 어느 강연에서 전한 로버트 젠슨(텍사스대학 저널리즘학과) 교수는 히브리성서 예레미야의 말을 빌려 답을 내놓는다.

“수확기는 지나갔다. 여름은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다.”

알바트로스의 죽음을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으면 수확기는 지나가고 여름은 영원히 끝나 있을 것이다. 구제받기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

[5월3일자]

이태은 원불교환경연대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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