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자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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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의 발견
  • 김도경 교도
  • 승인 2019.05.08 15:39
  • 호수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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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노인의 몸이 돼 45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마치 어느 영화 속 시간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 4월의 마지막 날, 용산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진행하는 ‘노인생애체험’에 참여했다. 인천의 작은 서점에서 60대 이상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인문 활동 프로그램을 강연할 필자와 서점 대표가 함께했다.

40대인 우리가 아무리 생각한들 온전히 체득하기 어려운 노인의 몸을 짧게라도 체험한 후,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자는 취지의 첫걸음이었다.

체험 후, 서점 대표는 시력을 잃어가며 환시(幻視)를 호소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지켜보는 안타까움과 슬픔, 노화로 인한 몸의 변화에 따른 어머니의 심리적 위축감을 비로소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필자는 2주 전,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뵙고 왔다는 근황을 전했다. 그곳에 계신 어르신들을 뵈며 노화, 질병으로 인한 몸의 고통은 결국 개인의 몫이고 특히, 필자의 아버지가 앓고 있는 치매는 증상 정도에 따라 그간 종횡무진 활동해 오던 세계의 급격한 축소 또는 상실을 의미한다는 등 노년의 삶에 관해 상실감, 쓸쓸함, 안타까움 등의 복잡한 감정을 나눴다.

체험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황반변성, 녹내장 현상을 적용한 고글 착용부터 팔목과 발목의 모래주머니, 손가락과 어깨, 등에 대는 억제대를 착용한다. 팔과 다리용 관절 장비까지 착용하니 몸이 휘청하다. 눈앞이 흐릿하다.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허리가 앞으로 휘어지며 한 발짝 옮기는 것조차도 내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80대이신 부모님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몰랐던, 상상을 넘어서는 불편함과 위험이 온몸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고글과 팔과 다리용 관절 장비를 착용하고 노년의 삶을 체험해 봤다.
필자는 고글과 팔과 다리용 관절 장비를 착용하고 노년의 삶을 체험해 봤다.

일반적인 집 구조를 구현해놓은 체험관의 첫 난관은 의외로 현관이었다. 모래주머니와 억제대를 착용하니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엇박자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한다. 주방 체험 공간에서는 냉장고 문 열기와 음식 확인조차 만만치 않았다. ‘뚜껑을 편하게 열 수 있는 반찬통으로 바꿔드려야 했구나’라는 반성이 뒤따랐다. 소파에 앉거나 바닥에 앉고 눕는 것, 화장실 이용, 계단, 장롱 열기 등의 체험을 하면서는 ‘화장실에 보조손잡이를 설치해드리는 게 좋겠다’는 그간 미처 살피지 못한 작지만 중요한 발견의 순간들이 이어졌다.

얕고 짧은 체험이었지만 막연했던 노년의 몸을 직접 느끼고 발견하게 했다. 세상과 사물로부터 낯섦과 소외를 경험하게 했다. 시간과 공간, 관계, 기억, 미각으로부터 점차 고립돼 가는 부모님을, 전철과 횡단보도에서 고군분투할 30년 후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작은 체험’을 통한 ‘깊은 발견’을 느끼며 노인의 몸과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남겼다.

요즈음 ‘발견성’이라는 단어를 자주, 깊게 고민하고 있다. 발견(發見), Discovery, ‘미처 찾아내지 못했거나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찾아냄, 알다, 깨닫다, 알아채다, 나타내다, 밝히다’라는 뜻이 있다. <대종경> 요훈품 33장에 ‘그러므로 중생들은 은혜에서도 해(害)만 발견하여 난리와 파괴를 불러오고, 도인들은 해에서도 은혜를 발견하여 평화와 안락을 불러오나니라.’ 결국은 일이나 몸이나 마음이나 인간관계도 ‘발견성’이 기본이 아닌가. 가족, 동료, 교당 구성원들의 마음을 서로 발견하려는 태도, 갈등과 문제의 원인과 해결안을 발견하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5월을 맞이한다.

5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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