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숲을 품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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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숲을 품은 사람들
  • 조은혜 교도
  • 승인 2019.05.16 03:22
  • 호수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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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 비자림로 확장공사로 베어질 위기에 처한 150년생 팽나무.
팔레스타인 한 여인이 이스라엘이 쏟아 부은 폭탄 탄피에 싹을 틔웠다.

아침 출근길은 언제나 혼잡. 비좁은 지하철에 구겨지듯 쏠려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 손바닥을 들여다보는데 열중합니다. 손바닥에 올려진 세상, 모바일로 통하는 세상과 소통하고 교류하느라 옆에 누가 있는지, 어떤 표정인지 살필 여유도, 생각도 없습니다. 문득,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모두 숨은 잘 쉬고 있는 걸까, 산소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 옆 사람이 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는 곳, 피의 보복으로 파괴와 살상이 일상이 된 곳, 팔레스타인. 온통 흙먼지로 뒤덮인 폐허의 땅에서 한 여인이 이스라엘이 쏟아 부은 폭탄 탄피를 모아 밭을 만들고 탄피 안에서 싹을 틔운 초록생명들에 물을 주는 사진이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울컥해지는 순간이었죠. 뭇 생명들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폭탄에서도 질기게 살아나는 생명의 기운을 어찌할까요.

그 사진을 자세히 보려고 제 모바일에서 페이스북을 열어 서둘러 몇 개 키워드를 검색하던 중에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진 한 장을 마주했습니다. 제주 제2공항을 만들고 공항 이용객들의 차량통행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비자림로 확장공사가 한창입니다. 미세먼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너도나도 나무심기에 공을 들이는 한켠에서 하루에도 수백그루 나무가 베어지고 있는 현장소식이죠. ‘비자림로 삼나무 통신’이란 이름으로 시민 모니터링단이 숲에 살면서 무차별 살상되고 있는 나무들 소식을 전하는 중인데요, 하필 “150년 된 팽나무를 살려주세요”라는 호소글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한눈에도 오랜 연륜이 느껴지는 나무 한 그루가 잔뜩 신록을 품고 풍성한 가지를 있는 힘껏 하늘로 뻗고 있는 우아한 모습이 순식간에 전기톱에 쓰러질 위기 앞에 떨고 있는 안쓰러운 모습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 폭탄에도 뿌리를 내리는 새싹을 키우는 손과 전쟁 없는 일상에서 개발과 지역경제 활성화란 이름으로 150년 된 나무에 쇠톱을 들이댈 손이 있는 곳, 지속가능해야 할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한반도 생태계 젖줄이 되는 4대강을 가두었던 인간의 이기심을 내려놓는 순간, 자연은 여여하게 그 모습을 되찾고 있는 것을 봅니다. 보 개방 1년 만에 하천 스스로 자정을 시작해 녹조를 해결하고 맹꽁이, 삵, 수달 같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돌아올 수 있는 서식지로 변신중입니다. “천지에는 도와 덕이 있어 만물이 그 도와 덕이 나타나는 가운데 생명을 지속하며 그 형각을 보존하나니”(<정전> 천지은). 우리들 손이 있어야 할 자리는 순리자연한 곳이어야 함을 깨우쳐 주려는 듯이요.

예상대로 4월말에 벌써 한낮 기온이 28도까지 치솟더니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토요일에는 대구의 날씨가 30도를 넘어서는 등 뜨거운 여름이 한달이나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기후재앙을 이야기하면서 다들 걱정이라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개발과 편리, 경제와 이익이라는 탐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량생산 소비중독 생활방식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조해봅니다. 자동차가 씽씽 달릴 너른 길을 요구하며 전쟁의 포화도 견뎌낸 150년 살이 나무를 톱질하도록 방관하고, 미세먼지, 폭염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대신 공기청정기, 에어컨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 혼자 살아남기’를 선택하고 있지 않은지.

지하철에서 튕기듯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니 이른 아침부터 열기가 느껴지네요. 뜨거운 여름을 견뎌낼 방법을 찾지 말고 지구를 식힐 초록일상수행부터 챙겨야겠습니다. 초록교당 문의 www.woneco.net

[5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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