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의 향기] ‘법과 먹이 가슴에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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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법과 먹이 가슴에 배다’
  • 우형옥 통신원
  • 승인 2019.05.22 14:40
  • 호수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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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양교당 이법은 교도
석가탄신일에 태어난 아들 덕분에 원불교에 입교할 수 있었다는 이법은 교도.

[한울안신문=우형옥] 지난해 10월에 열린 경기인천교구청 특별천도재 ‘소멸과 생성의 하얀축제’에는 유주무주 고혼들과 교구청 대불사에 합력해준 1,850위 영가들의 위패족자가 대법당 한 면을 꽉 채웠다. 족자 크기는 가로 70cm, 세로 2m. 영가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며 이들의 해탈천도를 염원하는 10장의 위패족자를 완성한 서예작가 이법은 교도(72세, 한국미술협회 감사)를 5월12일 동안양교당에서 만났다.

한 번 물든 먹은 빠지지 않는다

“우리 아들이 45살이니까 입교한 지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이 교도는 석가탄신일에 태어난 아들 덕분에 원불교를 만났다. 주변 사람들은 아들을 불교와 연원을 맺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다 지인의 어머니가 불교나 원불교나 진리는 똑같으니 원불교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고. 마침 안양교당이 바로 집 밑에 있었던 건 또 무슨 인연이었을까? 그는 돌잔치를 치르자마자 아들을 업고 교당으로 향했다.

“교당에 가니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사월 초파일이 돌이라 부처님과 연원을 맺어주려 하니 누가 원불교에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교무님이 잘 왔다면서 일원상 부처님께 축원기도를 해 준다고 본인 돈을 꺼내서 불전에 놓고 기도를 하는 거예요. 나는 빈손으로 갔는데…. ‘교무님’이라는 존재를 처음 봤는데도 너무 좋고, 기도를 듣는데 그 목소리에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고 감사했어요.”

그렇게 교당에 마음이 안착해 버렸다는 그. 서예의 시작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어렸을 적, 담임선생님이 서예 선생님이셨는데 저도 글씨를 곧잘 썼거든요. 그래서 서예를 좋아했어요. 그후 학업으로 중단했다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나니 ‘엄마가 아닌 나로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 서예가 떠올랐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먹물은 한 번 배면 안 빠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법도, 서예도 제 마음에 콱 배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껏 번져 마음속에 항상 있는 거죠.”

서른이 넘어 시작한 새로운 길. 교법과 먹의 한 점은 나이 칠십이 넘은 그의 인생을 모두 물들였다.

오롯이 바치면 틀리지 않는다

하루에 한 장. 글자를 쓰는 데 20일, 족자를 만드는 데 10일. 천도재를 장엄하게 했던 위패족자는 완성되는 데 장장 30일이 걸렸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을 때의 그 희열이 감히 상상되지 않아 힘든 마음에 경계가 오진 않았는지, 마지막 이름을 쓰고 마침표를 찍었을 때 마음은 어땠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단칼에 “단 한 번도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한다. 오히려 너무나 황홀하고 감사한 경험이었다는 그는, 활짝 웃으며 이제 서예를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영가 이름을 적을 때 틀리지 않기 위해 적어도 네 번 이상 이름을 부르며 썼는데 나중엔 진짜 이 영혼들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단한 기운이었죠. 제가 나쁜 짓만 안 하면 이분들이 저를 다 도와주지 않겠어요?(웃음).”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니 입이 떡 벌어질 뿐이다. 그녀가 서른이 넘은 나이에 서예를 시작했음에도 경기도 미술대전 종합예술 대상을 타고, 한국 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된 것은 이러한 에너지와 집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글자 폭이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어떤 영혼들은 서운해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철저하게 틀을 짰어요. 그 틀을 짜는 데도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렸죠. 그러니 저는 어떠한 화선지도 버릴 수 없었어요. 절대 실패하면 안 됐죠. 그렇기에 시작 전에는 항상 입정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절대 틀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오롯이 마음을 바치면 틀리지 않더라고요.”

오롯한 마음. 그것이 그의 비결 아닌 비결이었다.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

그는 65세가 되던 해, 후진들을 위해 수원대학교 교수 자리를 내려놓았다. 갑자기 줄어든 수입에 옷도 직접 만들어 입고, 머리도 직접 자르고, 손수 염색도 했다. 그 모든 것을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그냥 도전했다. 지금은 교당에 그가 만든 옷을 안 입어 본 사람이 없다. 입고 있던 이날 옷도 직접 만든 옷이라며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제 손재주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진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니까 하지 못한다는 핑계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언제든 하고 싶은 건 도전하세요.”

서예로는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이뤘다는 이법은 교도. 가족들과 함께 대종사님이 내놓은 이 길을 조용히 따라가며 살고 싶다는 그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다음 도전이 또 기다려진다.

한울안신문에 보내는 응원의 글을 적고 있는 이법은 교도.

[5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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