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전무출신의 삶, 나눔으로 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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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전무출신의 삶, 나눔으로 채움
  • 김화이 기자
  • 승인 2019.06.12 13:24
  • 호수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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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 신림교당 윤경중 교도
신림교당 윤경중 교도.

[한울안신문=김화이 기자] 이른 아침, 콩나물 출하 준비를 하는 그의 손길이 부산하다. 매주 금요일마다 당일 수확한 콩나물 850봉지를 전국 37개 교당으로 보내는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윤경중 교도. 두 번씩 씻은 콩나물을 봉지에 담은 뒤 개수에 맞게 박스 포장하기까지 그의 손이 안 닿는 과정이 없다. 오로지 깨끗한 물로만 키운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한 지 어느덧 8년. 수익이 많이 남는 일도, 누가 알아봐 주는 일도 아닌데 그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콩나물을 재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 위치한 은혜의집의 ‘은혜나눔’ 공장을 찾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좋은 국산 콩만 고집하다

은혜의집 콩나물은 시중 콩나물에 비해 못생겼다. 다소 질기고 얇은 것도 다른 콩나물과 다르다. 이유를 물었더니 예상 밖의 답이 돌아온다.

“콩나물을 먹어 본 분들이 ‘이거는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이 키운 콩나물 같다’고 좋아해요. 간혹 까다로운 분들은 왜 콩나물이 이렇게 질기냐고 묻는데, 그건 지하 암반수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키운 콩나물이 우리의 자랑이죠.”

게다가 국산 콩 중에서도 가장 질 좋고, 잘 안 썩는다는 제주도 표선 콩을 쓴다고. 전국을 돌며 좋다는 콩은 다 써 봤지만 표선 콩만 한 게 없다는 그는 “비록 단가는 높지만 좋은 재료에서 좋은 먹거리가 나오잖아요. 그 신념으로 고품질의 원재료를 고수하고 있어요. 그 덕분에 무중금속, 무성장촉진제 조건을 갖춰 GAP 인증도 받았죠”라고 설명한다.

“무공해 콩나물이어서 그런지 폭 삶아서 그 물을 마시고, 콩나물에 밥도 비벼 먹으면 아프던 몸이 좋아졌다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국산 콩을 알아보고 은혜나눔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거죠. 저도 그분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어요.”


용인에 사는 신림교당 교도

윤 교도는 서른 살에 서울로 올라와 종로교당과 구의교당을 거쳐 30대 중반에 신림교당에 정착해 4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신림교당에서 맺은 인연이 여전히 삶의 중심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고등학교 때 부산 대신교당 지성인 교무님의 정갈한 모습에 반해서 입교했어요. 전무출신을 하고 싶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짐 싸서 총부에 갔죠. 당시 장응철 상사님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고, 이동진화·서대인 종사님과 같은 훌륭한 선진들과 같은 방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몸이 너무 약해 1년 만에 환속했다. 비록 전무출신은 못했지만 그때 선진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심중에 깊이 박혀 지금껏 원불교를 떠나지 않았다고.

그러다 신림교당과 인연이 됐고, 당시 신림동 난곡에서 은혜의집 선교소를 운영하며 도시빈민교화를 하는 길광호·강해윤 교무를 만났다. 그곳은 서울 시내에서도 유명한 달동네였다. 그는 “두 교무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성직의 삶을 살아가며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고 있었어요. 나는 당시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큰아들과 함께 도시빈민교화 봉사자로 나서기로 했죠. 달동네라 아침이 되면 부모는 모두 일하러 가요. 그러면 남는 아이들을 불러다 공부도 가르치고 컴퓨터도 가르쳤죠. 두 분은 다리도 다 뻗지 못할 만큼 좁은 골방에서 살았어요. 그 모습에 마음이 갔나 봐요.”

그렇게 시작된 그의 교정교화 봉사가 30년 세월이다. 난곡이 재개발되면서 강해윤 교무는 미국 LA교당으로 발령을 받아 떠났고, 길광호 교무는 용인으로 이사를 와 은혜의집(청소년쉼터)을 지었다. 하지만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웠던 짐을 짊어지면서 길광호 교무가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윤 교도는 길 교무의 헌신으로 이어온 은혜의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아 강 교무에게 전화했다. “제 힘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은혜의집을 맡아주세요. 제가 끝까지 도와드릴게요.” 그때 했던 약속이 지금의 은혜나눔 공장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맛도 영양도 꽉 잡은 누룽지

은혜나눔 공장에는 최근 누룽지 사업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아직 못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맛있다는 ‘은혜나눔 현미 누룽지’. 입소문을 타자 지금은 소량 생산으로 없어서 못 파는 날도 있다. 현미를 도정해서 곧바로 밥을 하기 때문에 영양소 손실도 적고, 기계를 이용해 고온으로 눌리기 때문에 맛도 고소하다. 더위로 콩나물 판매가 중단되는 6월 중순~9월 중순까지는 대대적으로 누룽지를 홍보할 계획이다. 은혜나눔 공장에서 생산된 수익금은 교정교화 및 소년원 퇴원생을 위해 쓰인다.

전무출신의 길을 뒤로하고 환속할 때, 이동진화 선진으로부터 “너는 참 자립심이 있다”는 칭찬 한마디가 두고두고 그의 가슴에 남아서일까. 올해 나이 일흔여섯, 여전히 봉사를 놓지 않는 그의 삶은 나눔으로 꽉 차 있다.

6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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