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비결요? 밥 먹고 양치하듯 일상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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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비결요? 밥 먹고 양치하듯 일상이 되는 거죠”
  • 우형옥 통신원
  • 승인 2019.07.02 23:56
  • 호수 11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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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 수원교당 전종만 교도

[한울안신문=우형옥 통신원]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교당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앞장선다는 제보를 듣고 찾아간 일요일 아침 수원교당. 대각전 앞에서 밝은 미소로 교도들에게 주보를 나누는 이가 있다. 벌써 6년째, 일요법회 안내를 맡고 있는 수원교당 청운회 부회장 전종만 교도(하나병원)다.

닮고 싶은 사람

수줍은 얼굴로 “저보다 형, 누나들이 더 열심이신데 제가 인터뷰라니 부끄럽네요”라고 말하는 그는 혜산 전음광 대봉도의 손자, 로산 전성완 종사의 아들이다. 6남매가 모두 교당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보기 드문 일원 가족이다. 그 비결을 묻자 조금은 부러운 말을 한다.

“사실 저희는 좀 특별한 게 있죠. 태어나보니 아빠가 재벌, 아빠가 대통령, 이런 말처럼 태어나보니까 총부 옆에 살았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총부 옆에 산다는 게 굉장히 특별한 거더라고요”

아버지의 독경 소리에 눈을 뜨고 집 안에 들락날락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교무였으며, 할머니라 따르던 분들은 교단의 큰 선진들이었다. 조실 옆에서 축구하고, 영모전 앞에서 야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그와 남매들에게 원불교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도 가족교화는 어렵다. 오늘도 아내와 아들이 교당에 함께 오지 않아 혼났다며 웃는 전 교도. 그러나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억지로 교당 가자, 심고 모셔라 하는 무서운 아빠는 되고 싶지 않아요. 마지못해 온다면 나중에 커서 자력이 생겼을 때는 오지 않겠죠. 저는 그래서 교법으로 이끌기 전에 좋은 남편, 친구 같은 아빠이고 싶어요.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미운 사람이 하면 싫잖아요. 그러니 친해져야죠. 그리고 중요한 건 신앙생활을 하는 제가 잘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저의 부모님도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교법을 생활표준으로 잘 살아주셨기에 저도 그 삶을 닮고 싶어요.”

아버지가 생활에서 보여주셨던 이소성대, 근검절약 정신을 이야기하는 그의 손에는 수십 년 전 전성완 종사가 그랬듯 철 지난 달력을 오려 만든 메모지가 들려 있었다.

교법으로 행복하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원불교의 교법이 정신건강에 핵심적인 것만 딱 모아놓은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얼마 전 경기인천교구 출가교역자협의회에서도 교무들이 행복하기 위한 건강요법을 강의했다. 그래서 그에게 행복의 조건을 물었다.

“세계 3대 강의 중에 하나인 하버드대학교, 탈 벤 사하르 교수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또는 ‘긍정심리학’을 보면 공통분모가 있어요. 결국은 원불교 교리에 다 나와 있어요. 경계를 당해 돌리는 공부, 일심 공부, 실지 불공, 영육쌍전, 감사생활이 그것이죠. 그래서 저는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잘못된 것 같아요. 왜냐면 교전에 답이 나와 있으니까요. 중요한 방점은 실천입니다.”

그냥 하는 것

그는 ‘평상심이 도’라는 법문을 유무념 삼아 실천하고 있다. 아침 기상 시간, 출근시간, 점심시간, 퇴근 전에 일원상서원문을 읽고 1분 선과 1분 기도를 한다. 자기 전에는 30분간 원불교 관련 서적을 읽고, 교전 공부 후 취침에 들어간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챙기는 그 마음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경계를 통해 공부한다고 하잖아요. 일상의 깨달음과 절실함, 그런 순간들이 저를 일으켰어요. 병원을 개원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다 보니까 뭔가 절실함이 필요했어요. 그 마음을 꾸준히 유지하다 보니 습관이 됐죠. 공부하는 중간에 의무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고비를 넘으면 밥 먹고 양치하는 것과 같이 공부심이 챙겨져요. 그냥 일상인 거죠. 생활의 일부처럼요.”

그에게 있어 봉공생활도 마찬가지다. ‘봉공의 힘은 어디서 오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그는 “원불교인이라면 법회나 봉공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만약 ‘원불교’라는 퍼즐이 있다면 법회나 봉공은 그중에 한 조각인 거죠.” 밥 먹고 양치질하듯 그에게 공부와 봉공은 둘이 아니었다.

한번 옳은 길이라 판단하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직진하는 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단호하게 “성불제중”을 꺼낸다. 그에게 성불제중이란 “인생이라는 축제에서 깨달음이라는 음식을 장만해 사람들과 잘 나눠 먹는 것과 같다”고. 건강한 수행인의 모습이 여기에 있었다.

7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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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2019-07-17 20:46:03
교무님 자녀는 바람 피워도 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