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출가 교도 전문가집단의 필요성
상태바
재가출가 교도 전문가집단의 필요성
  • 손승조 교도
  • 승인 2019.07.24 17:07
  • 호수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3
가락교당 손승조 교도

‘석가모니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미 뛰어난 혁신가였다. 신분과 계급을 따지지 않고 비구와 비구니를 차별하지 않는 등, 소위 불교가 당시 인도에서 가장 진보적인 종교였다’(<불교신문> 3198호, 윤성식 논설위원).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조선불교혁신론>을 통해 ‘불교의 혁신’을 부르짖으며 ‘불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내세운 대혁신가였다. 그 내용은 서품 15~19장에 밝혀져 있다.

원불교 100주년을 넘어 2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지금, 대종사의 그 혁신정신을 온전히 계승하고 있는지, 스마트폰이 나온 지 10년 만에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물질문명 시대의 변화 속도를 앞서지는 못할망정 잘 따라가고 있는지, 물질의 노예생활에 휘둘리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혁신은 세상에 없는 것을 최초로 만들어 내는 발명이 아니다. 혁신은 편집이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찾아내서 새로운 관점과 문법으로 새롭게 짜 맞춰 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40여 년 전 학생회 시절에 들었던 부교무의 설교를 오늘 주임교무의 설법에서 그대로 듣고 있다는 것은, 40년 동안 교화방법(혹은 마케팅)에 대한 관점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전통 혹은 핵심가치의 존중이라기보다 무비판 내지 무의식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무혁신의 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원기100년 전후로 교화 일선인 각 교당에서는 ‘100년 성업 5대 지표’중에서 ‘대자비교단’과 ‘보은대불사’는 모두 사라지고 ‘교화대불공’과 ‘자신성업봉찬’만 기형적으로 강조하며 ‘마음밭’만 파고 있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하화중생(下化衆生)엔 뜻이 없고 오직 상구보리(上求菩莉)만 최상의 정답이라는 견고한 자세를 보일 뿐이다.

이러한 우리 사업의 중심에는 ‘사람’은 없고 ‘교법’만 있을 뿐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법을 세운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관심이 없다. 사회적 혼란과 고통의 끝을 보여주던 민주화 투쟁과 5.18의 시기에도 “아직 때가 아니므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했고, ‘혼밥 혼술의 시대’, ‘자살과 고독사의 시대’, ‘비정규직 차별의 시대’, ‘하도급 갑질의 시대’에도 고통받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불과 10년도 안 된 ‘원씨네(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가 있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고객인 사람들의 삶, 특히 고통받는 낮은 곳의 사람들에 대한 우리 교단적 관심은 적다. 마음공부가 중요한 것은 말로 다 못하지만, 무간지옥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에게 목련구모(目連救母)와 같이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 진정한 위로 한 마디 건네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 지금까지 얼마나 자비지심을 가지고 관심을 주었던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의 변화를 보여주는 200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천주교의 경우 놀라운 변화를 볼 수 있다. 1995년에 295만 명이던 천주교 신자의 수가 2005년에는 514만 명으로, 10년 동안 219만 명(증가율 74%)이 증가했다. 또 올해 초에 발표한 <한국천주교회통계 2018>에 의하면 1년 신도증가율이 그동안 유지되던 1% 선이 무너지고 0.9%(약 5만 명) 증가에 그쳤다고 그들은 안타까워하면서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천주교의 발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극진한 정성과 정의실현에 바친 피투성이 헌신으로 나온 결과다.

이제 우리도 혁신해야 한다. 상구보리만으로 그동안 결과가 적었다면 이젠 하화중생으로 초점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10년만 혁신해보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10년의 혁신’에 전 교단과 전 교도의 노력이 합쳐진다면, 2005년 총인구수 대비 0.3%(약 15만 명)의 원불교 교도 비율이 3%(150만 명)로 상승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재가출가 교도의 전문가집단이다. 전문가집단의 진단과 처방을 통해 새로운 마케팅과 혁신, 그 고통스러운 변화의 과정이 없다면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그 혁신은 반드시 우리의 고객인 ‘파란고해의 일체중생’이어야 하며 사람을 살리는 교법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인들의 삶을 해부하고 샅샅이 살피고 알아내서 그들을 어떤 방법으로 살려낼지 고민해야 한다. 원불교를 위해 교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파란고해의 중생들이 간절히 원불교를 원하도록, 4대 종교라는 미명에서 깨어나 물과 밥과 공기처럼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원불교가 돼야 한다. 그것이 민족종교 말살이라는 일제의 무자비한 압제 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새 불교’를 세운 100년 전 대종사의 진정한 포부이며, 원불교를 살리는 길임을 확신한다.

7월26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