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으로 마음 삼고, 묘유로 생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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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으로 마음 삼고, 묘유로 생활 삼자’
  • 강법진 편집장
  • 승인 2019.08.07 12:20
  • 호수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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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김근수 원정사 열반
고(故) 다산 김근수 원정사의 발인식애서 전산종법사가 열반 축원 법문을 올리고 있다. 

[한울안신문=강법진] 숙겁의 불연으로 소태산 대종사를 뵙고 출가하여 일생을 대정진 대적공으로 일관해 온 다산 김근수 원정사(多山 金勤修 圓正師)가 7월31일 중앙대학교병원에서 열반했다.

다산 원정사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출생해 원기30년 영산교당에서 형산 김홍철 종사의 연원으로 입교했다. 다산 원정사는 원기34년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영산(현 영산성지) 서기, 삼창공사 내무, 교무부 주사, 총부 예감보, 동산선원 교무, 교무부 부장, 중앙선원 교감, 교무부장, 총무부장, 교정원장, 총부 교령, 총부 서울사무소장 등으로 봉직하시다가 원기77년 퇴임했다. 원기46년 ‘다산(多山)’ 이란 법호를 받고, 원기56년 수위단원에 피선되었으며 동년 대봉도 법훈을 수훈했다. 원기76년에 ‘정식출가위’에 승급하여 ‘종사’ 법훈을 수훈했다.

다산 원정사는 소태산 대종사의 일원대도 정법 회상에 참예하여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지극한 서원으로 일생을 일관했다. 교정원장 등 교단의 중책을 두루 맡으면서는 교헌개정, 법규정비, 제도개선 등 법치교단을 세우는 데 크게 공헌했다. 퇴임 후에는 ‘우리선문화원’을 통해 활선법으로 선의 대중화에 정성을 쏟았다.

인재양성에 특별한 서원을 세운 다산 원정사는 각산 신도형 종사 외 10여 명의 제자와 아들 김도종 교무를 출가시켜 일원회상 공도사업에 동참하게 했다. 퇴임 후에도 맑고 담백하게 선풍을 불리며 성리를 통달하여 참다운 신앙, 수행인으로서 후진을 지도하며 대해탈 공부를 즐겼다.

세수 98세 노환으로 열반하니, 법랍은 70년 4개월, 공부성적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 5호, 원성적 정특등으로 원불교 교단장으로 장례의식을 치렀다.

8월2일 다산 원정사의 발인식에서 전산종법사는 “다산 원정사께서는 대산종사님으로부터 ‘수양·연구가 여래다’라는 말씀을 들을 정도로 대법력을 이루었다. 이렇게 크게 일구신 법력으로 설하신 좌선 20단계 법문은 대종사님의 단전주 선법을 천단지전식으로 해서 우주와 내가 합일하는 선법을 지도하셨으니, 이는 후학들에게 수행의 큰 방향이 되었다”며 “대산종사님을 받들어 10년간 교정원장을 수행하며 법치교단의 초선을 다지며 4대 종교로서의 위상을 정립한 그 공부와 사업은 교단 만대의 사표가 됐다”고 법문했다. 이어 “다산 원정사께서는 ‘진공으로 마음 삼고, 묘유로 생활 삼자’는 말씀과 같이 생활 자체가 성리요, 활선이었다. 퇴임 후에도 수행에 목말라 하는 현대인들을 선의 진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활선법으로 선법화 시켰으니 그 무량한 공덕은 교단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며 소태산 대종사의 성주법문으로 열반을 축원했다.

이날 발인식 고사는 김경일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총장이 올렸고, 식전에는 우리선문화원 회원들이 다산 원정사의 은혜에 보은을 다짐하는 의미로 함다토성 헌다례 의식을 올렸다.

우리선문화원 회원들이 다산 원정사의 은혜에 보은을 다짐하는 의미로 함다토성 헌다례 의식을 올렸다.
익산성지를 떠나는 다산 원정사 운구차.

8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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