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외면하거나 들추어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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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외면하거나 들추어내는 사회
  • 이여진 교도
  • 승인 2019.10.02 01:16
  • 호수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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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주위에 매우 유능한 사람이 있다. 그는 어려운 일도 쉽게 척척 해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게다가 유머러스하고 성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상대에 대한 평가를 자의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장점만을 부각시키고 애써 단점을 보려 하지 않는다. 반면 싫어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애써 외면한 채 단점만 콕 집어 능력이 없거나 나쁜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가 이런 그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진영 논리’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 셋이 함의하는 교집합이 있다. 바로 평가 대상이 나인지 남인지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불공정과 부정의로 직결된다.

우리 사회가 시끄럽다. 서로 자기편 챙기느라 다투기 때문이다. 지역이 같던, 이념이 같던, 자기와 같거나 자기 그룹 사람이면 자기편이다. 객관적 사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편은 무조건 옳으며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상대를 향해 큰소리를 내지른다. 그의 장점은 침소봉대하고 문제점은 아예 눈감고 보려 하지 않는다.

반면 자기편이 아닌 경우, 애써 그의 장점은 깎아내린다. 그리고 마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눈에 불을 켜고 그의 흠결을 들추어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무엇하나 잡히면 좋아서 이를 확대, 재생산, 무한 복제해 널리 퍼트린다. 설사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아님 말고’식이다. 우선 악담을 퍼트려 망신을 주고 불신을 조장하면 대중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 일단 목표달성인 셈이다.

분명 우리는 두 눈에 두 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세태는 마치 한 눈 감고 보고, 한 귀 막고 듣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두 눈을 감는 것은 어떨까? 마치 정의의 여신 디케(Dike)처럼 말이다. 디케는 희랍 신화에서 질서와 계율의 상징인 테미스(Themis)의 딸이다. 디케는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 칼을 쥐고 있다. 초월적 능력자인 신조차도 저울을 이용해 시비선악을 정확하게 가려 단죄한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정의의 여신은 두 눈을 천으로 가리고 있다. 정의 실현을 위해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를 지니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롤스(Rawls, J.)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는 정의의 원칙을 제시하면서 이해 당사자들이 무지의 베일을 씀으로써 특정 대안이 자신에게 가져올 유불리를 모르는 상황을 가정한다. 그런 상태에서만 비로소 공정한 정의의 원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법에도 훌륭한 말씀이 있다. 원만구족 지공무사이다. 조금도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모든 것을 두루 갖추되, 그것은 지극히 공평하여 어느 한 편으로도 치우침이 없고 털끝만큼의 사사가 없다는 뜻이다. 이제 감정적 연대와 친소 관계는 멀찌감치 던져 놓고 사심 없이 정확하게 보고 듣고 판단하자. 또한 동일한 잣대로 나와 남에 대해 성찰해보자. 그것이 우리 사회에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방법이다.

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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