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해탈과 생사거래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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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해탈과 생사거래의 자유
  • 전정오 교도
  • 승인 2019.10.16 01:26
  • 호수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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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지난 주 법회 시간에 수산 조정제 종사께서 설법을 했다. 수산께서는 설법을 마치시며 본인은 생사해탈은 한 것 같은데 생사거래의 자유는 다음 생으로 넘겨야 할 거 같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과 관련한 일과 자주 접한다. 장례식은 물론 천도재 참여 등을 통해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삶에 대해서도 많이 경건해지며, 그 순간이나마 인생무상을 느끼면서 애착 탐착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알면서도 한편으론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정산종사께서는 생사편 9장에서 “열반을 앞두고 갖추어야 할 보물 세 가지가 있나니, 하나는 공덕이요, 둘은 상생의 선연이요, 셋은 청정한 일념이다”라고 말씀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청정한 일념인데 아무리 공덕을 쌓고 선연을 맺었다 할지라도 평소에 공부가 없으면 공덕이나 선연도 다 아상이나 착심으로 변하기 쉽나니 공수래공수거의 원리를 철저히 깨달아 최후의 일념을 청정히 하는 것이 제일 큰 보배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죽음에 임박해서 정신이 혼미할 때 최후의 일념을 청정히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평소에 늘 서원을 갖고 마음을 챙기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습관이 들어야 최후의 일념이 자동적으로 청정하게 챙겨질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2년 전 분당구청에서 스포츠댄스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스포츠댄스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본래 박자에 둔한 몸치인 필자가 공연을 하기에는 큰 무리가 따랐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공연에 나가게 됐다. 공연할 때는 생각을 하면서 하면 실수가 많이 나오므로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여야 된다는 선생님의 지도에 틈만 나면 집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연습을 했다. 필자의 지나친 연습에 아내와 아이들이 이제 그 음악만 들어도 지겹다고 할 정도였다.

공연 날 무대에 올라서니 아무 정신도 없었지만 수없이 연습한 결과, 동작하나 틀리지 않고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청정한 최후의 일념도 하루아침에 챙겨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끊임없는 기도와 수양을 통해서만이 챙겨질 것 같다. 그래서 대종사께서도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갈 때 바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은 무엇일까? 필자가 보아 온 법 높은 분들도 생사해탈은 한 것 같은데 죽음을 앞두고 큰 육체적 고통을 겪는 모습을 많이 봤다. 막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돌아와서 오랜 시간 깊은 기도를 하던 분도 뼈를 에이는 육체의 통증 속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생사해탈은 하셨으니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 새 몸 받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는 가능한 한 오래 사는 것보다 고통 없이 평안하게 열반에 드는 것이 가장 좋은 죽음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윤회를 믿고 영생을 믿기에 생사해탈은 어느 정도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사거래를 자유로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다. 생사거래를 자유로 할 수만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버스 안에서 노래 부르다가 열반했다는 선진님, 집에서 주무시다가 조용히 열반했다는 분들 소식을 들으면서 필자도 기도하다가 생을 마치는 것을 꿈꿔 본다. 

10월18일자

전정오
분당교당 교도
건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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