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거둔 이후에야 비로소 숨죽인 악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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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거둔 이후에야 비로소 숨죽인 악플
  • 이여진 교도
  • 승인 2019.10.22 23:26
  • 호수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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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11살에 데뷔, 생의 절반 이상을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지속적인 악플에 시달려야 했던 가수 겸 배우 S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여성을 억압하는 브래지어를 당당히 벗고 건강에도 좋은 노브라(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를 고집하면서 ‘당당한 여성’이 되고 싶었던 25세의,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을 세상 사람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끊임없이 그녀를 입방아에 올리면서 성희롱과 비방, 조롱과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그녀는 한때 악플과 루머로 잠시 연예계를 떠난 적도 있었다. 다시 복귀하면서 모 방송에 출연, 그간 악플로 인해 참담했던 자신의 심경을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자 대중이 손잡아 주기를 원하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무수히 떠들어대는 인간 참새떼들을 무마하기에 그녀의 노력은 역부족이었다.

그 또래의 다른 여자 연예인과 달리 그녀가 좀 독특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대중들로부터 ‘얼굴 없는 손가락 살인’을 당할 만큼 나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악플을 감수하기에 그녀는 너무나 어렸다. 소신 있고 자신만만했던 방송에서의 모습과 달리 그 나이 여자들의 감성을 그대로 지닌 여리디여린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조회수를 높일 선정적인 기사 소재에 몰두하는 영악한 언론이나 기자들은 S를 좋은 먹잇감으로 여겼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부풀려진 기사를 올리면서 호객행위를 일삼았고 그 기사를 보고 생각없이 댓글을 다는 악플러들. 일부 악플러들은 SNS까지 추적하여 비방과 비하를 늘어놓았다. 혹 이에 응답이라도 하면 들쥐같이 떼로 몰려들어 숨 막히게 사람을 옥죄어 버렸다. 익명의 군중 속에 얌체같이 숨어서 쉽게 말하고 느낀 대로 내뱉기를 일삼는 사람들. 그것이 비수가 되어 상대의 심장에 깊이 박히고 급기야 곪고 썩어 문드러지고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어버리는데 대중들은 그것조차도 재미 삼아 즐긴 것이다.

거대 포털사이트와 사회관계망(SNS) 등에서는 지금도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정보통신망의 익명성에 기대어 무책임한 댓글들이 누군가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디에도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연예인만이 아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인이라는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S가 사망한 이후 그녀에게 이어지는 추모의 글, 따뜻한 위로의 댓글들. 그녀가 생전에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선플(착한 댓글)이 이제야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하늘나라로 간 그녀는 그것을 읽을 수조차 없다. 예전에 악플러를 고소했다가 “동갑내기를 전과자로 만드는 게 미안하다”며 마음 따듯한 선처를 호소한 S가 하늘에서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는 않을까.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고, 70%가 이에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악플러를 엄벌에 처해 달라는 정부 청원도 이어지고 있다니 그나마 고무적이다. 하지만 연예인 자살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에만 반짝 거대 포털이나 언론에서 담론거리가 될 뿐,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졌다. 이번 만큼은 제대로 된 대책이 나와 또 다른 S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제 강력한 법적 처벌과 더불어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10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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