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와 강자·약자의 진화상요법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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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와 강자·약자의 진화상요법 탄생
  • 박혜현 교도
  • 승인 2019.10.31 11:17
  • 호수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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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원문화해설단과 떠나는 소태산 대종사의 경성교화 4
① 경성출장소 송도성 교무 부임 기념
경성출장소 송도성 교무 부임 기념

원기11년 음력 8월에 경성출장소 초대교무로 송도성이 부임한다. 초대교무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20세의 젊은 교무가 부임해오니 불만을 가진 회원도 있었으나 법회에서 거침없이 강론하는 것을 듣고, 송도성 교무가 예사 인물이 아님을 알고 경성 회원들은 깍듯이 모신다. 이때 법회는 매달 음력 6일, 16일, 26일에 큰 방에 빙 둘러앉아서 회화식으로 보았다.

원기12년 1월에 대종사는 상경하여 재가 선법과 고락의 원인에 대해서 설교하며 염불과 좌선을 많이 하라고 당부한다. 이공주는 “젊은 사람들은 나무아미타불로 염불하기가 어색하다”고 하니 대종사께서 “거래각도무궁화 보보일체대성경(去來覺道無窮花 步步一切大聖經)”을 염불하라고 지어 주신다. 곁에 있던 성성원이 “저도 하나 지어 주십시오”하니 “영천영지영보장생 만세멸도상독로(永天永地永保長生 萬世滅度常獨露)”를 지어 주어서 경성출장소 회원들은 이 두 시구를 외우며 수양공부를 했다. 대종사는 훗날에 이 두 시구를 합하여 영혼 천도를 위한 ‘성주(聖呪)’로 사용하게 한다.

원기12년 대종사는 김영신과 박길선을 조갑종의 뒤를 이어 광화문 근처의 부기학원을 다니도록 하여 익산 본관의 문서정리위원으로 근무하게 한다. 이때부터 대종사는 근대 회계를 도입하며 물질문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② 경성출장소 제2대 교무 송규(정산종사) 부임기념 사진(원기13년 음력 2월)
경성출장소 제2대 교무 송규(정산종사) 부임기념 사진(원기13년 음력 5월)

초대교무 송도성은 부임 10개월 만에 익산 본관 연구부 서기로 옮기게 되고, 뒤를 이어 원기12년 음력 5월에 2대 교무로 송규가 부임한다. 경성출장소 10여 명의 회원들은 송규 교무의 지도로 예회(법회)를 보고 대종사가 상경하면 법문을 받드는 재미로 신앙과 수행이 더욱 깊어진다.

원기13년 4월, 대종사는 계동 이공주 집에서 여러 법설을 하는데 이때 ‘약자로 강자 되는 법문’을 갑 동네, 을 동네와 지배자(일본), 피지배자(조선)로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공주는 이 법문을 그대로 받아 적어 <월말통신> 제1호에 발표하게 되니, 대종사 법문 중에서 공식 기관지에 발표된 최초 법문이 약자로서 강자 되는 법문이었다. 이 법문이 <정전> 제13장 최초법어의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이다.

경성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대종사는 김영신에게 전무출신을 권하고, 김영신은 송도성 교무를 따라 익산 본관으로 내려가는데 이것이 김영신의 출가 길이 된다. 익산에 내려온 김영신은 부기학원에서 배운 주산으로 제1대 제1회 기념총회 12년 결산 사무에 서무부 서기로 힘을 보탠다. 교단에 정녀 교무가 탄생하는데 김영신이 1호다.

제1대 기념총회 후에 송규는 영산 지부장으로 임명되고, 경성지부 3대 교무로 이춘풍이 원기13년 6월에 부임한다. 같은 해 7월 조전권이 경성출장소 공양주로 발령받아 오면서 전무출신 2명의 근무가 드디어 시작된다.

대종사는 경성에서 1개월간 지내며 공부에 목마른 경성회원들에게 각자 급히 알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소망을 적는 ‘급선무 발원장’을 제출하게 하여 일일이 감정하며 오늘의 신성만은 변치 말라고 당부한다.

이때 경성출장소는 매월 음력 6일, 16일, 26일 세 번 법회를 보았는데, 둘째 주 법회인 16일에는 예회(법회) 겸 단회를 진행했다. 오전에는 예회를 보고, 오후에는 단회를 하며 단비를 걷고 일기성적조사까지 하고 나면 오후 5시가 넘어 끝이 났다.

③ 창신동 출장소
원불교 개교 100년을 맞아 서울교당에서 매입한 창신동 출장소

예회에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은 다음날 저녁 이공주 집인 계동연구회에 모여 이공주의 주재로 예회를 보았으니 이것이 계동야회(桂洞夜會)이다. 계동 이공주 집이 우리 교단 야회의 첫 시행지가 된다. 예회에 오면 오전부터 오후5시까지 공부하고, 야회는 밤 11시경에 끝났다는 것을 보면 경성회원들의 공부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글ㆍ사진 / 박혜현 정릉교당 교도, 서울원문화해설단 부단장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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