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고 탈핵이 되겠냐마는...이 땅 어디에도 핵발전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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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고 탈핵이 되겠냐마는...이 땅 어디에도 핵발전은 안돼
  • 강해윤 교무
  • 승인 2020.02.22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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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탈핵순례 7주년 기념 기고
1986년 김현 교무 중심 첫 반핵운동
후쿠시마 핵사고 후 탈핵순례 시작

 

무엇인가 우리 운동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면서 지속할 만한 것으로 순례라는 걷기방식을 선택했다. 일종의 캠페인을 벌이기 위한 개인의 희생에 동지들이 호응해 줬다. 반면에 염려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출구가 없는 운동을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걱정에서다. 제일 먼저 건네온 질문은 "언제까지 할 거냐"는 것이었다. 핵발전소가 꺼지는 날까지라고 대답했다. 내가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면 누군가 계속 이어갈 것이고 우리가 못하고 가면 다음세대까지 이어질 거라고 대답했다.

영광 현지에서 탈핵운동을 펼치고 있는 '야생초 편지' 작가 황대권 선생이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종교성지는 단순하게 기념할 만한 장소로써가 아니라 그 이상의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성인의 위대한 깨침에 다가가려는 후예들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장소이며 그곳을 통해서 늘 마음에 모시고 사는 위대한 성인의 발자취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고 있는 지극히 종교적 의미를 가진 장소가 성지이다.

성지에는 여러 곳이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성지는 성현이 태어난 곳이다. 전남 영광은 바로 그런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백수 길룡리라는 산태극 수태극을 이룬 신비감이 도는 원불교 영산성지는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진 원불교의 근원성지이다.

그러나 무슨 운명인지 이곳으로부터 불과 7Km에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이하 영광원전)가 있다. 이 영광원전은 1986년 8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1호기를 비롯해서 6기의 핵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사고와 고장으로 말썽 많은 발전소이다.

1986년 4월은 인류역사에 끔찍하게 기록될 만한 핵사고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일어난 해이다. 그로부터 불과 몇 개월 후에 우리는 영광에 핵발전을 개시하면서 그런 구식과는 다르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해 여름 영광에서 반핵집회가 열렸다. 연사로 등장한 광주공해추방운동 대표였던 김현 교무는 핵발전은 안 된다고 힘차게 외치며 반핵의 깃발을 높이 치켜 들었다. 

그로부터 줄기차게 이어온 반핵운동은 영산성지를 지키는 김현 교무가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당시 강대훈 원불교대학생연합회장이 '내릴 수 없는 반핵의 깃발'이라는 구호로 앞장섰다. 거기에 영광지역주민들과 함께 영광지역 교무들이 끊임 없이 참여하여 반핵운동을 확장해 갔다. 그 힘은 '원불교천지보은회'라는 환경조직도 만들어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반핵운동의 불이 번진 것은 2002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된 중저준위 핵폐기장 부지선정과정에서 영광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본격화됐다. 김성근교무의 38일간의 단식으로 대표되는 원불교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2003년 벽두를 노무현 정부인수위에서 반핵집회를 여는 것으로 시작해서 내내 줄기차게 싸웠다. 그러다가 엉뚱하게 부안으로 불이 번졌고 그곳은 김인경 교무를 비롯한 원불교인들의 역할이 빛났다.

우리가 눈물겹게 만들어낸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서 핵폐기장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어쩐지 오늘의 문재인 정부가 다시 그 모양을 하고 있으니 역사의 반복이라고 해야 하나?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건재한 핵마피아들의 힘이라고 해야 할지? 그보다는 분명한 탈핵정책을 갖지 못한 문재인 정권에게 아쉬움이 많다.

내 생애 가장 투철하게 싸웠던 2003년 탈핵운동은 성지수호라는 비판에 가리워져 버렸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외쳤다. 원불교 성지만 아니라면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이 땅 어디라도 핵발전은 안 된다고 했으며, 자기 앞마당도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어디에서 반핵운동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

하지만 그건 변명처럼 묻히고 말았다. 그때 느꼈던 조직에 대한 실망감이 '원불교천지보은회' 사무처장을 내려놓게 했고 이어서 몇년 후에 '원불교환경연대'를 만드는 기연이 됐다. 운동조직은 그 사상에 맞게 구성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지들과 가장 단단한 운동조직을 만든 것이 원불교환경연대였고 대표도 맡았다. 

그러던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를 보며 경악했다. 우리가 가상으로 이야기했던 사고상황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며 저것은 멈추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역시나 지금까지 멈추지 않은 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몸서리치게 끔찍하다. 그게 영광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과연 우리의 성지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우리가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까? 영광에서는 그런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원불교환경연대는 곧바로 영광으로 달려갔다. 2012년이 되자 21개의 대한민국 핵발전소들이 얼마나 부실덩어리였는지가 속속 들어나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반핵운동이 잠자고 있는 동안 썪을대로 썪은 핵마피아들과 핵발전소는 각종 사고와 고장을 은폐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환경, 노동, 교육, 시민사회단체 100여 개가 모여 전국조직으로 '탈핵공동행동'을 조직하고 원불교는 영광 핵발전소를 전담하기로 하고 영광으로 내려 다녔다. 불행하게도 영광핵발전소는 가장 부실이 심한 핵발전소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영광공동행동과 원불교핵안대가 출범해 우리는 함께 연대하며 지원을 다녔다. 2012년 10월에는 언론에 공개된 사고 은폐를 항의하기 의해 며칠간 발전소 인근의 홍농교당에 기거하면서 발전소 앞으로 아침 출근피켓시위를 하러 다녔다. 그러다가 생각하기를 영광에서 탈핵운동을 상시적으로 할 방편으로 탈핵순례라는 것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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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탈핵순례 7주기 순례에 함께한 출가재가 교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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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객들이 한빛발전소 앞에서 기도 후 반대구호를 외치고 있다. 


무엇인가 우리 운동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면서 지속할 만한 것으로 순례라는 걷기방식을 선택했다. 일종의 캠페인을 벌이기 위한 개인의 희생에 동지들이 호응해 줬다. 반면에 염려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출구가 없는 운동을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걱정에서다.

제일 먼저 건네온 질문은 "언제까지 할 거냐"는 것이었다. 핵발전소가 꺼지는 날까지라고 대답했다. 내가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면 누군가 계속 이어갈 것이고 우리가 못하고 가면 다음세대까지 이어질 거라고 대답했다.

첫 순례는 2012년 11월 26일 월요일에 영광군청에서 깃발을 들고 22Km를 걸어서 영광원전 정문까지 가는 거였다. 오전 10시30분 출발기도를 시작으로 한 시간 정도를 걷고 10분 쉬어갔다. 총 5시간 넘게 걸었다. 점심은 길에서 간단한 김밥으로 해결했다. 그로부터 우리의 고난은 시작됐다. 매주 월요일 10시반이면 어김없이 영광군청 앞에 모여 기도하고 걷고 외치는 고난의 순례가 반복됐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탈핵순례에 참여했고 탈핵순례는 모든 일정에 최우선순위로 자리매김해 갔다. 원불교 교무들은 연 1회 단회 등을 통해 반의무적으로 탈핵순례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1회 거의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했으니 거기 오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매주 월요일 탈핵을 외치며 하루 온종일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걷는 기도를 온몸으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소중한 신앙체험이 되었다. 일흔의 청년 길산 이성광 교도는 맨 앞자리에서 깃발을 들고 걸어주셨다. 호르라기맨 구동명 교무, 김기성 교무, 오광선 교무, 김선명 교무, 송원근 교무와 지원팀으로 활동해준 서원조 교무, 하상덕 교무, 오종원 교무, 최경수 교무, 영광지역 황대권 대표, 윤금희 교수, 서울에서 달려와 주는 환경연대 이태옥 처장, 조은숙 처장, 김복녀 소장 등과 일본 독일 등 외국에서도 참여해줬다.

영산선학대학교 학생들은 연중 행사가 되었고 영광을 비롯한 광주전남교구 교무들과 환경시민단체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다. 현지 영광교구장을 역임한 김정심 교무, 이선조 현 영광교구장은 언제나 함께 기도하며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만 7년 366회 동안에 참여한 분들은 수도 없이 많다. 매주 탈핵순례로 쌓은 기록은 탈핵레터와 네이버 밴드에 기록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총망라한 기록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이 순례를 통해서 탈핵운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관심을 집중하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한빛 1호기의 조기폐쇄와 3~4호기의 조기폐쇄를 넘어서 영광핵발전소 6기를 영구정지하고 이것이 파급되어 남한의 모든 핵발전소와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와 핵발전이 사라지는 날을 염원하며 한 발 한 발 순례의 걸음을 떼고 있다.

2019년 11월 25일, ‘생명·평화·탈핵’ 깃발을 들고 영광군청 앞에서 한빛핵발전소 앞까지 걸으며 기도한 지 딱 7년이 되는 날이다.

걷는다고 핵발전이 없어지겠냐마는 없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걷는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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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어디에도 핵발전소는 필요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종교환경회의는 매월 서울 시내를 돌며 피케팅을 하고 있다. 
글/ 강해윤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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