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분노 그리고 광기가 낳은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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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분노 그리고 광기가 낳은 조커
  • 이여진 교도
  • 승인 2019.12.04 22:56
  • 호수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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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올해 최고의 R등급 영화는 단연 조커(JOKER)이다. R등급은 전 연령층이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만18세 미만은 부모를 동반해야만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영화는 제작부터 적은 관객일 수밖에 없는 부담을 안고 시작한다. 그런데 조커는 역대 R등급 코믹스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게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러니 명실상부 흥행의 성공과 평단의 인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거머쥔 셈이다. 특히 주인공 호아킨피닉스는 25kg이나 감량하고 열연한 덕에 그의 전작들은 다시 조명을 받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분위기는 코믹 히어로라기보다는 느와르에 가까울 만큼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하다. 입양아인 주인공 아서는 정신질환자였던 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며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학대받고 무시당하는 일은 그의 일상이 된다. 코미디언이 꿈인 그는 기분과 상관없이 웃음이 터지고 이를 참지 못하는 병 때문에 무대에서 관객의 조롱거리가 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삐에로 복장에 광고판을 들고 목이 터져라 호객행위를 한다. 하지만 동네 불량배들은 재미 삼아 그를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팬다. 동료는 배신하고 직장에서는 해고된다. 급기야 정신질환자에 대한 예산이 삭감되어 진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된다. 아무리 살아보려고 발버둥 쳐도 희망은 보이지 않고 출구는 없다. 아서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지, 세상은 나에게 왜 이런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절규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서 그의 억울함과 분노는 더욱 증폭되고 세상에 대한 광기는 극에 달한다.
 
갈 곳 없이 세상 한 귀퉁이에 내동댕이 처진 그의 삶은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일그러지면서 자신에게 모멸감을 준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조커로 변해간다. 이전에 조커 영화가 조커의 악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이번에는 병약한 아서가 광기 어린 조커로 변모해 가는지 그 과정에 방점이 찍혀져 있다.
 
흔히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하다’는 평을 많이들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질환자인 조커의 기이한 행동 때문일까? 죄책감도 없이 자신의 범죄행위를 불운한 운명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짜증스러움 때문일까? 빈부격차로 양극화된 고던 시의 사회, 그리고 그것과 닮아있는 우리가 사는 불완전한 이 세상에 대한 불편함일까? 아니면 ‘나는 아서와 같은 사람들을 배려했는가?’라는 질문에 “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가 조커가 되는데 내가 모종의 방조를 하지 않았나 하는 자성도 있을 것이다. 혹여 아서와 같은 누군가를 나도 차갑게 외면하고 오히려 약하다는 이유로 거칠게 밀쳐내지는 않았을까 하는 자책 말이다. 그렇다고 조커의 살인을 묵인할 생각은 없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져 옴을 부인할 수는 없으리라.
 
아서의 엄마가 지어준 그의 예명은 해피(happy)였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인 없다고 나지막하게 흐느끼며 고백하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 상처받은 또 다른 조커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생각해 볼 일이다.
 
 
12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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