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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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기준
  • 손승조 교도
  • 승인 2019.12.24 18:56
  • 호수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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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은 올해 가장 인상 깊게 본 드라마다. 근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웬만한 쟁점들이 죄다 등장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아할 법한 러브스토리, 미혼모·혼외자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양육 갈등을 담은 주인공 동백이 모녀의 삶, 까불이를 통한 묻지마(열등감) 범죄와 검경수사권 조정이 정치적 쟁점으로 다뤄졌다. 또한 주인공 용식이의 경찰 수사 활약, 동백이 친모인 정숙으로부터 엿보았던 서민들의 보험살이 인생과 가족 간 분쟁, 제시카가 보여준 외모지상주의와 SNS 중독, 처가 시댁 식구들에서의 헬리콥터 맘과 고부갈등 등 요즘 시대의 사회적 그림자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사회문제만 채워 넣은 것은 아니다. 옹산이라는 작은 마을, 그 안에 게장골목 식구들이 보여준 운명공동체의 정겨운 모습과 사람 사는 재미, 옹산의 왕언니(?) 곽덕순이 어린 필구를 측은히 여겨 자기 손주처럼 아끼며 게장밥을 먹이는 훈훈함 속에서 사람 사는 인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돈을 잃어버리고 가게를 접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사람(향미)을 버리지 않는 동백의 모습에서는 험난한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숱한 고난들 사이에서도 ‘나를 믿어요’라며 희망과 용기를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동백의 모습은 외적 세계에만 몰두하며 끌려다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무언의 경종처럼 들렸다. 갈수록 오락적인 요소가 높아진다고 생각했던 드라마와 엔터테인먼트가 언젠가부터 재미와 더불어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대중의 고민과 대안을 잘 녹낸 대안적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고 본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인 BTS가 세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아미(army) 팬덤을 불러온 현상은 단순히 춤과 노래만 잘해서가 아니다.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세계적 그룹들과는 다르게 BTS 노래 안에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비추며 미래 희망, 자아 성찰로 내면의 가치를 찾으라고 외치고 있다. 이 노래를 들은 서양 청소년들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에 서구 언론과 음악평론가들은 뜻밖의 대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회·문화적 변화가 가져온 영향력은 종교가에서 행했던 역할과 맞물린다. 흡입력 높은 재미 속에 종교가 주도해 왔던 자아 성찰과 도덕적 삶에 대한 경종, 사회적 대안까지 담고 있으니 이 시대의 엔터테인먼트는 국적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가장 효율적인 콘텐츠 도구가 돼 가고 있다. 

2014년 경영난에 빠진 <뉴욕타임즈>가 만든 ‘혁신보고서’에는 그들의 경쟁자가 더 이상 월스트리트저널이 아닌 유튜브, 구글, 페이스북이라며 사회적 변화 자체를 크게 받아들였다. 새로운 차원의 경쟁 대상과 목표는 좋은 혁신의 기준이 됐다.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뉴욕타임즈>는 163년간 매일 아침 진행되던 1면 편집회의를 폐지할 수 있었다.  

권위적인 데스킹을 없애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직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사내 문화를 진작시키고 나니 창의적인 콘텐츠들이 쏟아진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혁신 1년 후, 디지털 트래픽 28% 증가, 모바일 트래픽 50% 증가, 홈페이지 유료독자 25% 증가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만들어냈다.

종교의 경쟁자는 각종 엔터테인먼트와 소셜미디어로 인해 탈종교화 되는 사회 현상이다. 이제 종교는 <뉴욕타임즈>가 그랬듯이 이를 혁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불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위해 불교의 오랜 관습을 과감히 혁신했듯이 말이다. 

 

12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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