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유행 지난 옷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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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유행 지난 옷처럼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0.01.23 18:10
  • 호수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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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13

새해가 되었다고 했더니 벌써 날짜가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또 날이 가고 해가 또 가면, 젊은이는 늙어갈 것이고 지금 노년이라면 미래 어느 날 티끌처럼 사라지겠지요.
 
집집마다 옷장을 뒤져보면 유행이 지난 옷들이 있습니다. 과거 한때는 아무리 멋이 있었다고 해도 한번 유행이 지나버린 옷은 보잘것이 없습니다. 지금 일시적 욕망으로, 훗날 결국 허망해질 것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지는 않습니까? 참으로 가치 있는 게 아니라면, 나중엔 흡사 유행 지난 옷가지처럼 될 것입니다.

나고 죽고 죽고 나고 그침이 없이 / 육도세계 그 얼마나 돌고 돌았던가 / 이 몸을 이 생에 제도 못하면 / 또 어느 생을 기다려서 제도하리요(生死死生無停止 幾廻六道轉如輪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무상함을 가슴 깊이 느껴본 사람은, 자신의 미래 또한 곰곰이 생각하며 앞날을 준비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에는 본성(本性)으로 살다가, 과거의 무명업장에 따라 감정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사회적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이성(理性)이 자라나는데, 세상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하지만 삶을 들여다보면 이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타고난 능력이 다름도 그렇고, 똑같이 노력해도 삶이 평등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이유 없이 찾아오는 행운과 불운도 그렇고, 빈부와는 무관한 기쁨과 슬픔이라든지, 배움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는 내면적 고통이나 우울증, 또는 심적 평화는, 이성이 가진 근원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옛 부처님은 너와 나의 본성(本性)을 말씀하셨습니다. 

본성의 삶은 이성으로는 해결 못 하는 번뇌와 고통을 완전히 해결하고, 자기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무한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지식도 또한 행복의 도구가 되어 자기 자신을 구속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나의 참 주인공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지 못함은 / 다만 종전의 분별식(分別識)만 알기 때문이라 / 무량겁 이래로 나고 죽음의 근본인데 /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본래면목이라 부르네(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長沙景岑선사, 9세기).

수많은 수행자들이 오직 생각으로만 찾아서 결국 자기의 식(識, 의식)을 곧 자성의 본체인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과 본성의 차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만약 나의 마음이 내 안의 어떤 것과 싸우고 갈등한다면 이 마음은 식(識)이지 본래마음은 아닙니다. 나의 본래마음은 애초부터 시비(是非)와 증애(憎愛)가 없으며, 그러므로 갈등과 속박이 없습니다. 언제나 허공처럼 투명하고 고요하고 밝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유롭습니다. 

내 몸의 주인은 마음이니, 몸을 닦는 것이 마음을 닦는 것만 못하고, 나의 참 마음이 곧 법신불이니, 부처님을 좇는 것이 내 마음을 밝히는 것만 못합니다. 

지금 60대 이상인 분이라면, 육신이 하루로 보면 저녁으로 접어들었고, 계절로 치자면 이미 가을을 지난 때입니다. 앞으로 과연 어떻게 사시는 게 좋을까요? 앞날을 위해서 여태껏 준비해두신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무언가를 얻으려거나 잃지 않으려 애쓰는 그것이, 나중에 보면 ‘유행지난 옷’이 될 줄 어찌 알겠습니까.

 

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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