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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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남아요
  • 이태은 교도
  • 승인 2020.02.05 16:11
  • 호수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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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감수성up

설 명절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용산역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입가엔 마스크가 씌워졌다. 더 단단히 마스크를 여미고 광장에 섰다. 지난해 11월부터 용산역 광장에서 ‘전기가 남아요. 핵발전소 이제 그만’이라는 피켓을 들고 수요 탈핵 피켓팅을 해오던 터였다. 

중년의 한 남자가 내 앞에 선다. 표정을 보아하니 피켓 내용과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전기가 남는다고? 원전이 얼마나 싼데,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냐”로 시작한 레퍼토리는 “북한 핵은 왜 반대하지 않냐, 빨갱이들”이라는 뻔한 결론으로 흘러간다. 

“전기는 설비용량기준 40% 이상 남아서 버리고, 핵발전소보다 6기 이상 많은 가스발전소는 놀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핵발전을 대체할 대안은 있다. 핵발전은 세금지원이 없으면 가장 비싼 에너지다. 후쿠시마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이 10%로 세계는 핵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설명을 시도하지만 시비가 목적이었던 터라 반말과 삿대질, 모욕이 이어진다. 급기야 들고 있던 피켓을 두고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궁금해졌다. 왜 이들은 ‘전기가 남아요’에 흥분할까? 

총 25기 핵발전소 중 고장과 사고, 정기점검으로 16기만 돌아가는데도 전력공급량 대비 전력예비율은 1월 30일 오전 10시 현재 23.98%이다. 지금은 난방으로 최대전력을 소비하는 겨울이다. 봄·가을 전력소비가 적은 새벽 2시에는 70% 이상의 전기가 버려진다. 

핵발전은 끄고 켜는 데만 한달 이상 걸린다.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여름·겨울 피크 시기에 맞춰 수요전망치를 매년 상향하니 발전소는 자꾸 늘어나는 구조가 된다. 핵발전을 기본에너지로 설정한 탓이다.

핵발전을 반대하는 것은 ‘문명사의 도달에 대한 반동적 이념’이며, ‘원시적 자연으로부터의 퇴행’이라고 매도하는 일본 전후 최대의 사상가라는 ‘요시모토 다카아키’류의 생각이 우리사회에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는 걸까? 

오스트리아의 녹색사상가 로버트 융크는 ‘중앙집중적인 권력을 필요로 하고 관련된 정보나 자료가 철저히 차단되거나 통제되는 원자력 시스템은 민주주의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전기가 남아요’라는 사실에 접근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마스크로 일정하게 예방할 수 있다지만 방사능은 마스크 아니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 방사능은 생명과 공존할 수 없다. 46억 년 전 지구 탄생 이후 생명체 출현까지는 10~20억 년이 필요했다. 방사능이 제거되는 시간 만큼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첫 편에 등장했던 류드밀라는 방사능으로 피폭된 소방관 남편이 죽기까지 임신 사실을 숨기고 필사적으로 간호했다. ‘당신 남편이 아니라 방사능 덩어리’일 뿐이라는 의료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진물이 터지고 괴물처럼 변해가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봤다. 남편이 죽고 류드밀라는 출산을 했지만 아이는 4시간 만에 죽었다. 엄마 몸에 들어온 방사능을 아이가 전부 흡수했고 엄마는 깨끗하게 해독돼 살아남았다. 방사능이 현재를 살리고 미래를 죽여 버린 꼴이다.  

순환적 삶의 방식에 익숙했던 인디언들은 늘 자신들이 선택한 일의 결과가 일곱 세대 이후 자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우리도 일곱 세대의 자손을 생각할 수 없을까? 전기가 남아도는데 말이다.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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