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모든 감각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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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모든 감각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걸까?
  • 박선국 교도
  • 승인 2020.02.26 16:29
  • 호수 11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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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마음공부7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 2011)
감독 : 데이빗 맥켄지 / 출연 : 에바 그린, 이완 맥그리거

마이클이란 남자가 있다. 이 여자 저 여자 사귀는 사람은 많지만, 마음을 주지 않는 바람둥이 요리사. 그리고 수잔이라는 여자가 있다. 일 외에는 다른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연구원. 그런 둘이 우연히 담배 하나로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 둘.

그사이 세계 이곳저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람들이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감염된 사람들은 감정의 심한 기복을 느끼게 되고 그 후 감각이 하나씩 손상된다. 마이클과 수잔도 그렇게 감각을 잃어간다. 사회는 점차 혼란에 휩싸이고 사람들의 삶의 형태도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이제 겨우 서로의 짝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감각이 사라지면서 그들의 사랑도 함께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영화해설과 마음보기 

영화 ‘퍼펙트 센스’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로맨스 영화이며 동시에 인간 세계에 불어 닥친 이유 모를 사건을 다큐멘터리 터치로 다루고 있는 재난영화로 소개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사고가 아닌 이상 나이가 들어가면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감각을 잃어간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나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급작스럽고 한꺼번에 일어난다면 어떨까, 라는 질문에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는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와 인간들이 겪게 되는 사회현상이라는 두 축이 서로 겹쳐지며 이어져간다. 두 연인이 서로를 더 알아가며 가까워질수록 사회(세계)는 반대로 점점 더 혼란 속에 빠져든다. 

두 연인은 각자의 가슴속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마이클이 한 여자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픈 애인을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병에 걸린 그녀를 돌보지 못하고 떠나온 이유가 그녀 몸에서 나는 냄새(아마도 약품이거나 죽음의 냄새가 아니었을까?)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수잔에게 말한다. 누구보다 뛰어난 그의 향 감수성은 요리사(특히 고기의 신선도가 관건인 생선요리사)로서는 축복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행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수잔이 일에 몰두하는 이유는 만나는 남자들이 다 나쁜 남자들뿐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어렸을 적 거식증으로 생긴 식이장애로 그녀는 불임이 되었다)으로 남자들을 멀리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마이클은 첫 감염으로 깊은 슬픔과 회한에 빠지고 그 후 후각을 잃어버린다. 반대로 냄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다음 두 번째 감염으로 수잔은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되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미친 듯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먹게 된다. 그리고 그 후 미각을 상실하게 된다. 그와 함께 식이장애라는 장벽을 넘을 수 있게 된다. 

분노와 함께 찾아온 청각장애로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가장 기쁜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서로를 찾게 된다. 그리고 시각을 잃어버리고 어둠 속에서 서로의 숨결과 손으로의 감촉을 느끼며 조우한다. 아직 촉각은 남아있지만 다른 감각과 감정이 사라진 그 상황에서 그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아무 느낌도 없이 알고 있다. 편안함이 거기에 머문다.

‘퍼펙트 센스’의 ‘퍼펙트(완벽한)’란 채워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데서 이뤄진다고 영화는 말한다. 이 영화는 인간이 감각을 잃게 되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불친절함이 불편하지 않은 것은 그 이유를 알 필요가 없음을 영화를 마지막까지 보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없음으로써 확연히 드러나는 것(‘나’라는 존재)과 드러남으로써 확연히 알아지는 것(감정은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생각의 산물)이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나’만 바라보고 ‘내 감정’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이다.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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