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프지만 간직해야 할 슬픔에 관하여, [무릎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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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프지만 간직해야 할 슬픔에 관하여, [무릎딱지]
  • 김화이 객원기자
  • 승인 2020.03.18 14:15
  • 호수 11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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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산책3
글. 샤를로트 문드리크
그림. 올리비에 탈레크
한울림어린이, 2010

상처에 난 딱지를 일부러 뜯으면 또다시 피가 나고 덧납니다. 조금만 참으면 저절로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날 걸 알지만 아프면서도 짜릿한 쾌감 때문에 가만두지 못하죠. 그런데 여기 전혀 다른 이유로 무릎 딱지를 후벼파는 아이가 있습니다. 고통을 느낌으로써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남자아이가 있습니다. <무릎 딱지>를 소개합니다. 

아이가 가만히 무릎의 피를 바라봅니다. 소파도, 쿠션도, 배경도 온통 피처럼 붉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이는 자기가 자는 동안 엄마가 죽었기 때문인지 좀처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죠. 전날 밤, 작별 인사하는 엄마에게 “난 이제 엄마 아들이 아니라고, 이렇게 빨리 가 버릴 거면 나를 뭐하러 낳았느냐고” 소리쳤습니다. 깊은 절망과 상실감에 울기만 하는 아빠에게도 “흥 잘 떠났어. 속 시원해”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합니다.
 
며칠 후, 아이는 엄마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집 창문들을 꼭꼭 닫습니다. 그것도 푹푹 찌는 한여름에요. 엄마 목소리가 지워질지도 모른다며 귀를 막고 입을 다무는 기행을 합니다. 엄마의 죽음을 부정하고 화를 내던 아이가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 엄마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것 말고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또 있을까요.

아이는 아플 때마다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넘어져 다치면 무릎에 상처 딱지가 생기기 무섭게 손톱으로 뜯어내 기어이 피를 봅니다. 아이에겐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를 기억하려는 아이의 애틋한 몸부림에 독자들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됩니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찾아와 꼭 닫아뒀던 문을 다 열어버리자 아이는 엄마가 빠져나간다며 비명을 지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엄마는 여기, 가슴 위 쏙 들어간 곳’에 있다고, 절대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고 아이를 위로해줍니다. 아이의 ‘무릎 딱지’는 이제 제대로 아물 수 있을까요?


김화이 객원기자

3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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