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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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 정형은 교도
  • 승인 2020.03.25 11:29
  • 호수 11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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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태백 바람의 언덕에서 남편과 함께.

여보,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오르는 지난 일요일, 당신의 3재를 교당에서 올렸어요. 당신이 그토록 예뻐하고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피어오르던 손녀 여섯 살 정민이는 당신 영정 앞에 온 정성을 다해 절을 올렸어요. 네 살 시연이는 도무지 할아버지가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울음을 터트렸고요. 천도재를 지내며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당신과 이별하고 있어요. 

당신이 쓰러진 지 한 달, 그 짧은 동안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평소에 늘 운동하고 단순 소박한 생활을 하며 아무런 증세도 없이 건강하던 당신이 공원을 달리다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던 열하루. 이미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데 잠자듯 누워있는 당신 곁에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정말로 이렇게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난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요.

슬며시 눈을 뜨고 일어나 씩 웃으며 뭣들 하는 거냐고 묻지 않을까, 마지막 장기 기증 수술을 하는 아침까지도 내내 그런 기적을 바랐습니다. 교당의 모든 교도님과 교무님의 간절한 기도와 격려에 힘입어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하루 두 번, 혼자밖에 들어갈 수 없는 면회시간에 우리는 20년 동안 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한 마디 말이 없는 당신의 얼굴과 손발을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수고 많았다고, 더 많이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수없이 되뇌었지요.

돌아보면 선물같이 주어진 열하루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살면서 못 다한 이야기, 함께 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참 좋았다고, 애 많이 썼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왜 살면서는 그런 이야기를 못하고 마음속에 담고만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손녀들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들려주고 손발을 주무르며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당신 눈에 배어난 눈물이 당신의 안타까움만 같았습니다. 당신인들 얼마나 뜻밖이라 놀랐겠습니까. 정신을 추스르며 걱정 말라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을 텐데, 그저 나만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며 당신과 오롯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회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던 젊은 날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보람, 자연 속에서 땀 흘리며 정직하게 농사를 짓고 나누던 기쁨이 당신 삶의 행복이었습니다. 함께 했던 사람들, 학생들, 고향 친구들, 가족과 친척들에게 당신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주어진 자리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순현이라는 법명처럼 순임금의 효심으로 어머님의 노후를 16년간 함께 보내고, 처가 부모님의 병환을 6년 넘게 돌보는 빛나는 심성을 가졌습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일을 하는 것을 철학으로 삼고, 명예와 권력을 좇는 세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가까운 사람들과 하는 일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코로나 확산 때문에 출입을 꺼리는 데도 먼 곳에서 달려와 밤늦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고 슬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당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품대로 홀연히 떠나며 웃는 얼굴로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몸은 비록 떠나가지만 우리의 가슴 속에, 당신의 장기를 받은 사람들의 몸속에, 당신은 여전히 살아 있어요. 우리도 힘을 내어 오손도손 당신 뜻 받들며 잘 살게요.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길이 생사가 없다 하니 부디 좋은 세상에 좋은 인연으로 다시 오소서. 그렇게 우리 다시 만나요, 사랑하는 여보!  

글/ 정형은 여의도교당 교도, 청소년문화연대킥 대표

남편과 함께 평창 발왕산 등반.
남편과 함께.

* 고인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기원하며, 생전에 함께한 정형은 교도님과의 추억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한울안신문 합장-

3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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