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이겨내요, 코로나19] 영상설교_ 인생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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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겨내요, 코로나19] 영상설교_ 인생삼조
  • 한덕천 서울교구장
  • 승인 2020.03.2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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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천 서울교구장 영상설교4
사회적 사랑 실천할 '인생삼조'
자조ㆍ호조ㆍ천조로 연대적 사랑 필요

 

 

우리 종교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사회적 사랑”을 일으켜야 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회적 사랑은 연대의 길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입니다. 마스크 양보하기, 소외된 사람들 챙기기, 방역의 일선에서 수고하는 사람에게 감사와 응원하기 등 이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우리를 살릴 것이며, 이것이 산 종교, 산 종교인입니다.

반갑습니다. 요즘 연일 방송을 보기가 두려워집니다. 그동안 봄을 삼켜버린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고자, 세 번에 걸쳐 영상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가 마지막 영상설교가 되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또 영상으로 안타까움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국에 교도님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스승님의 말씀은 무엇일까를 연마하다가 떠오른 글귀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격언이라고 생각되어 오늘 이에 관한 내용으로 함께 하고자 합니다.

저는 기도의 필요성과 종교의 필요성을 설명할 때 꼭 인용하는 법문이 있습니다. 심고와 기도장의 “사람이 출세하여 세상을 살아가기로 하면 자력과 타력이 같이 필요하나니, 자력은 타력의 근본이 되고 타력은 자력의 근본이 되나니라”는 말씀입니다.

대화를 나눌 때 질문을 하곤 하는데, “과연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 살 수 있을까요?”

질문하면 누구도 자신의 능력만으로 살 수는 없다고 답을 합니다. 인간은 태중에서부터 타력의 힘으로 태어나고 성장합니다. 출생 순간부터 일생을 마칠 때까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더욱이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꼭 받아야 할 세 가지 도움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항상 세 가지의 조력, 곧 돕는 힘이 있습니다. 세 가지 도움을 인생의 삼조라고 하는데 이 삼조가 혼연일체가 될 때 삶의 힘이 생기고, 꿈과 희망을 성취하고, 인생의 큰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래로부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을 유전시켰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뿐만 아니라, 현재의 코로나19도 삼조가 어우러진다면 빨리 소멸될 것입니다.
 


삼조의 첫째는 자조((自助)입니다.

이는 스스로 자기를 돕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인생에 유익하고 도움이 되도록 생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삼조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기본이 자조의 인생입니다. 자조는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삶을 유익하고 복되게 스스로 돕는 것입니다. 새는 자기의 날개로 하늘을 납니다. 나무는 자기의 뿌리로 하늘 높이 자랍니다.

자조는 모든 것을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능력과 힘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정산종사님은 “스스로를 버리는 것은 고목”이라고 하셨고, 대산종사님은 “천하가 다 버려도 스스로 자기를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대산법어 회상23)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자력은 실력이요, 생명이요, 원기니,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돌리는 삶을 살자”는 말씀입니다. 타력에 의지한 삶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요,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니 그런 사람이 어찌 생기를 타고 산 사람이 되겠습니까?

세상에는 자기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의뢰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의뢰심은 나의 보배를 사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공자님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고, 석가세존은 “일체는 유심조니라”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은 자력생활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종종 인용하는 법문 중에 전주의 교도 한 사람이 천주교인과 서로 만나 담화하는 중 천주교인이 묻기를 [귀하는 조물주를 아는가] 하는데 그가 능히 대답하지 못하였더니, 그 사람이 [우리 천주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이가 곧 조물주라]고 말하는지라, 후일에 대종사께서 그 교도의 보고를 들으시고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그 사람에게 다시 가서, 귀하가 천주를 조물주라 하니 귀하는 천주를 보았느냐고 물어보라. 그리하여, 보지 못하였다고 하거든 그러면 알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느냐고 말한 후에, 내가 다시 생각하여 보니 조물주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귀하의 조물주는 곧 귀하요, 나의 조물주는 곧 나며, 일체 생령이 다 각각 자기가 자기의 조물주인 것을 알았노라 하라. 이것이 가장 적절한 말이니 그 사람이 만일 이 뜻에 깨달음이 있다면 바로 큰 복음이 되리라.](변의품)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우리 각자 스스로가 자신의 조물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주물주인 자기 스스로를 포기하면, 사람도 일원상의 진리도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스스로 포기하고 자기를 돕지 않으면 누구도 내 삶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종교마다 타력을 중시할 때 자력양성을 주창하셨습니다.

대산 종사, ‘자력 양성의 도’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자력 생활로 참 나를 찾고 보면 내가 곧 부처요 하늘이요 조물주니라. 자력과 타력을 병진하면 타력도 자력이 될 수 있으나 내 마음을 먼저 밝힌 후에야 남의 마음을 밝힐 수 있고, 내 마음을 먼저 정화한 후에야 남의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나니 먼저 자력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니라.」고 하시면서 구체적으로 자력을 강령잡아 주셨습니다.

자력양성의 사실적인 방향을 정신의 자주력, 육신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으로 밝혀주셨는 세상을 살아보니 정신의 자주력 없이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참답게 인생을 살 수 없고, 육신의 자활력 즉 건강 없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 수 없고, 또한 경제적 자립없이 내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추호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에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자기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정부에서 방역의 주체는 이제 국민 각자가 되어야 한다고 홍보하고 있듯이, 국민생활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자주력, 자활력, 자립력을 갖추는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도님들이 스스로 방역의 주체가 될 때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타인들을 살리는 보살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 기회에 자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력양성에 정진하는 기회가 되도록 합시다.
 

둘째는 호조(互助)입니다. 이는 사람끼리 서로 돕는 것입니다.

호조는 인간이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서로 도와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이 진정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나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서로 도와야 살 수 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이 세상에서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남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삶이란 언제나 더불어 삶”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많은 학자가 지금 인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큰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기후변화를 포함한 심각한 생태계의 위기, 핵 재앙의 위험,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불평등 문제 등으로 인해 지금 인류는 그 어떤 때 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더불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희망은 ‘더불어’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이 ‘더불어’를 단순히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의 관계까지를 달관하시어 사은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인류의 희망은 사은의 가르침이 편만해질 때 더욱 크게 드러날 것입니다.

사은은 모든 존재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를 깨닫게 하는 것이며, 보은해야 고해를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더불어’는 참 멋진 이상(理想)이지만, 늘 경쟁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에게 ‘더불어’를 이루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더불어’를 이루기 위해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를 깨닫고, 작은 것에서부터 보은을 실천하는 것에서 길이 열릴 것입니다.

코로나19로 만들어진 낯선 어휘가 “사회적 거리두기”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 난관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만을 하다 보니, 세상은 생기를 잃고 우울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입니다. 세상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흐르고, 이웃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가득할까 걱정입니다. 코로나에 완치된 사람들이 몸이 아픈 것보다 이웃으로부터 경계 받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고 합니다.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쓴 유발 하라리가 “인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분열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연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우리가 분열을 선택한다면 위기는 장기화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더욱 큰 재앙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가 글로벌 연대를 택한다면, 이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상대로한 승리가 될뿐만 아니라, 21세기의 모든 전염병을 상대로한 승리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듯이 코로나의 극복도, 개인과 사회의 평화와 성장도 [더불어]의 호조에 비법이 있습니다

우리 종교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사회적 사랑”을 일으켜야 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회적 사랑은 연대의 길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입니다. 마스크 양보하기, 소외된 사람들 챙기기, 방역의 일선에서 수고하는 사람에게 감사와 응원하기 등 이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우리를 살릴 것이며, 이것이 산 종교, 산 종교인입니다.
 

셋째는 천조(天助하늘의 도움)입니다. 이는 땅에서 하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왜 대종사님이 이미 법계의 인증을 받은 주세성자가 되셨는데, 구인제자에게 법인기도를 하게 하셨을까요?

대종사 구인 단원에게 말씀하시기를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 세상을 구할 뜻을 가진 우리로서 어찌 이를 범연히 생각하고 있으리요. 옛 성현들도 창생을 위하여 지성으로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天意)를 감동시킨 일이 없지 않나니, 그대들도 이 때를 당하여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에 감동이 있게 하여 볼지어다. 그대들의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이라 마음이 한 번 전일하여 조금도 사가 없게 되면 곧 천지로 더불어 그 덕을 합하여 모든 일이 다 그 마음을 따라 성공이 될 것이니, 그대들은 각자의 마음에 능히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라고 하시면서 일제히 기도를 계속하게 하셨습니다(서품13)

그 기도는 법계를 감응시켰습니다. 그리고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 신명이 이미 감응하였고 음부 공사(陰府公事)가 이제 판결이 났으니 우리의 성공은 이로부터 비롯하였도다.](서품14)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종교의 교조들은 기도를 통해서 천조의 도움을 얻는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종교마다 공통적으로 기도를 주요 신앙 덕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기도는 천의를 감동시키는 비법입니다. 우주의 기운을 끌어당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기도의 감응을 구인제자들이 직접 체험케 하여 기도의 표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대종사님은 “자신할 만한 타력을 얻은 사람은 나무뿌리가 땅을 만남과 같은지라, 우리는 자신할 만한 법신불(法身佛) 사은의 은혜와 위력을 알았으니, 이 원만한 사은으로써 신앙의 근원으로 삼고”라고 하셨듯이 천조가 우리 인생의 중요합니다.

교정원에서는 이 나라와 세계의 코로나 종식을 위해, 대각개교절을 준비하기 위해,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기 위해 교단적으로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전 교도가 함께할 기도문을 배부하게 될 것입니다. 교당에서 또한 가정에서 매일 4월 한 달간 특별기도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는 천조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교도님이 이 기도에 동참하여, 천의를 감동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돕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도, 하늘도 도울 수 없습니다.

마을에 물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난 여기 있을 거야,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거니까!”라며 버텼습니다. 수위가 점점 높아지자 보트가 그 사람에게 다가오더니 “올라타요!”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일 없어요. 난 하나님께서 구해 주신다고요!”라며 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수위는 아주 높아져 그는 지붕 위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잠시 후 헬리콥터가 다가와서 그를 구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싫다고 하였습니다. “일 없어요. 난 하나님께서 구해 주신다고요!” 끝내 그는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가 잠시 후 천당 어귀에 이르자 그는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어째서 구해주지 않으신 겁니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런 딱한 사람아! 보트를 보내주고, 헬리콥터를 보내줬으면 됐지,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비유를 위해 꾸며낸 이 얘기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돕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이나 하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조없이 호조를 받을 수 없고, 자조와 호조없이 천조를 받을 수 없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자각케하는 비유담입니다.

지난주에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말씀을 드렸더니, 영상을 보신 몇 분이 저에게 8년전에 작고한 박완서작가의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을 피드백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작가가 건강을 잃은 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글인데, 글 중에 기억되는 부분은 “세잎 클로버는 행복! 네 잎 클로버는 행운?

행복하면 되지, 행운까지 바란다면 그 또한 욕심이겠지요.

오늘부터, 지금부터, 숨 쉴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라는 글이었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사태가 진정되어 일상의 행복과 소중함을 공유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인생, 온전한 인생을 살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삼조인 자조와 호조와 천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게 될 것이며, 자력은 타력의 근본이 되고, 타력은 자력의 근본이 될 것입니다.

합장하시겠습니다

 

거룩하옵신 법신불사은이시여!

3월의 마지막 법회를 영상으로 봉행하옵나이다. 교당에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법신불을 찬송하고, 법음에 함께 추임새를 넣지 못하고 이렇게 안타까움으로 3월을 회향하옵나이다.

저희들은 함께 하지 못함에 더욱 법회의 소중함을 깨닫고, 법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나이다. 이 깨달음이 신심, 공심, 공부심, 자비심을 더욱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염원하옵나이다.

영명하옵신 법신불사은이시여!

지금 전 세계를 공포로 떨게 하고, 경제침체와 여러 가지 고통을 겪고 있는 인류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이 필요한 시기이옵나이다.

저희들의 삶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돕는 자조의 힘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의 공동체 정신인 호조와 법신불사은의 천조가 함께 해야 온전함을 알기에 오늘도 인생삼조를 얻고자 발원하나이다.

또한, 세상에도 이 삼조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평화가 열리고, 삶다운 삶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기에 모든 인류가 자조의 지혜와 삶을 걷도록, 모든 인류가 서로 돕는 호조의 지혜와 삶으로 더불어 살아가기를, 모든 인류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천조의 위력을 얻어서 온전한 삶이 열리기를 비옵나이다. 그래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 늘 감사 생활하게 하시고, 함께 살아가는 은혜를 깨닫게 하소서.

일심으로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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