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의 오명을 벗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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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4월의 오명을 벗기자
  • 이여진 교도
  • 승인 2020.04.07 23:10
  • 호수 11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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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로 봄비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주었다.’ 장편시 「황무지」의 한 구절이다.

수상한 20세기 모더니즘의 대표자인 T.S. 엘리엇은 1년 12달 중에서 4월을 콕 찍어 잔인한 달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주었다. 우리 사회에서 4월에 일어나는 잔인한 현실을 접하게 되면 그의 시가 빠지지 않고 회자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우리의 4월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갑자기 나타나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19는 평범했던 우리 일상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처음 갈팡질팡 촉발되었던 마스크 대란도 이제는 어느 정도 수습되었고 생활용품 사재기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난제는 단연 교육이다. 코로나19 추이를 계속 지켜보면서 개학을 연이어 미루는 교육당국도 난감할 테지만, 반복되는 개학 연기에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이제 서서히 지쳐간다. 집에서 편안하게 개인 과외를 받는 학생들과 학교나 공공도서관의 건물폐쇄라는 푯말 앞에 발길을 돌리는 학생들은 벌써 한 달이 넘게 학습력의 차이가 심하게 벌어지고 있다.

올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들은 더 힘겹다. 처음에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이제 한숨과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고3 수험생들은 재수생, 삼수생들에 비해 학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계속 오락가락 변경되는 학사일정으로 수시를 준비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올 수능 수리영역의 범위조정으로 여름 이후 반수생이 대거 몰려올 것이라는 소문 역시 고3들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학교에서는 교육부의 지시에 따라 온라인 수업을 부랴부랴 준비하지만, 사상 초유의 예행연습 없이 진행되는 수업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수업부실로 이어지고, 가정마다 다른 온라인 교육환경의 격차는 학습의 빈부격차를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사태를 뒤엎을 수도 없고 코로나19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전 세계 최대 IT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은 자신감을 갖고 이러한 위기를 기회 삼아 온라인 학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공교육에 학습 인프라를 구축하고 화상회의, 화상수업, 쌍방향 소통 가능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계기로 말이다. 초기에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시행착오는 어차피 한번은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아니던가.

황무지를 썼던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신앙의 부재로 인한 정신적 황폐함, 인간성 부재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갑고 척박한 황무지에서도 모질게 살아나는 라일락의 강인한 생명력을 말함으로써 절망적인 삶의 나락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지금 코로나19로 뒤덮인 우리의 4월, 털썩 주저앉아 잔뜩 움츠리고 잔인한 4월만을 주절거리기보다는 엘리엇이 강조했던, 잔인하리만큼 강한 생명에의 의지와 삶에의 집념을 떠올려보자. 그러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불안한 4월을, 툴툴 털어내고 일어나 새로운 각오로 미래를 향해 힘껏 달음박질하는, 그야말로 잔인하리만큼 강인한 4월로 각인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울안칼럼
이여진 
강남교당, 서울교사회장

 

4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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