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열린날_영상설교] 후천개벽의 주세불로 오신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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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열린날_영상설교] 후천개벽의 주세불로 오신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 한덕천 발행인
  • 승인 2020.04.1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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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지은 이름 중빈(重彬)
후천개벽시대 정신개벽의 선구자로서 이 땅에 오신 뜻은

 

대종사께서 “내가 다생 겁래로 많은 회상을 열어 왔으나

이 회상이 가장 판이 크다”라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은 숙겁의 서원으로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진리의 사도로 오셔서

꺼져가는 佛日을 다시 빛내고 쉬었던 법륜을 다시 힘차게

굴리는 포부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일원의 광명을 다시 새롭게 빛내어

고해에 헤매는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할

개벽의 의지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지난주에 4월의 하루하루가 [원불교열린날]의 역설을 깨닫기 위해, 대종사님의 치열한 구도 역정을 묵상하면서 자신성업봉찬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원불교열린날]을 만들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결과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 있는 것이며, 특히 종교의 경축일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기 때문에 역설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대종사님 평전을 다시 꺼내 정독을 하고 있습니다. 대종사님을 좀 더 깊게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대종사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대각개교의 [원불교열린날]은 그 중심에 소태산 대종사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법회는 지난번 설교의 연속 선상에서 [대종사님은 왜 오셨을까?]로 원불교열린날의 역설 의미를 찾아서 이 땅에, 이 시대에 오신 기연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대종사 말씀하시었습니다. “내가 다생 겁래로 많은 회상을 열어 왔으나 이 회상 같이 인연 깊은 제자가 많이 모이는 때가 없었다.” (원시반본장4)라는 법문 중에서 “내가 다생 겁래로 많은 회상을 열어 왔으나”란 말씀에 종종 마음이 머물곤 합니다. 정산종사께서도 “종사께서 이 회상 여실 준비로 이 땅에 여러 번 나시어 미리 인연을 심으셨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미 교도님과 저도 그 인연으로 제도의 은혜를 입게 되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유추해보면 대종사님은 그냥 보통사람처럼 이 땅에 오셨다가 대각을 하시고 회상을 여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다생 겁래로 많은 회상을 열어서 선천시대에 중생들을 구제하셨던 구세주였습니다. 어떤 회상을 만드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구도 과정을 보면 짐작이 됩니다. 아마 과거생에 여셨던 회상이 충분히 역할을 다했고, 계속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새로운 원불교 회상을 열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즉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함을 직시하시고, 완전무결한 새 회상을 열기 위해 여러 겁의 경험과 서원을 뭉쳐서 후천개벽의 주세성자로 다시 오셨고, 새 회상을 여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대종사님을 [집군성이대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뭇 성인들이 모여 크게 이루었다’는 뜻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위대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정산종사께서 찬술한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성비명’의 서(序)에서 표현한 말입니다. ‘성비명’에는 소태산 대종사님이 새 주세불(主世佛)이요, 원불교가 새 주세회상(主世會上)임을 선포하는 주세불관을 밝히셨습니다. 

종교마다 말세와 말법을 말하고 새로운 메시아와 미륵불을 기다리는 위기의 세상에 새로운 사명을 띠고 출세한 소태산 대종사님은 모든 성인의 위대한 점을 한 몸에 다 뭉쳐 크게 이룬 부처라는 뜻에서 ‘백억화신(百億化身)의 여래(如來)시요 집군성이대성이시라’고 하셨습니다.(원불교대사전)

대종사님의 말씀이나, 정산종사님의 말씀을 빌리면, 대종사님은 다생 겁래로 많은 회상을 열어 중생제도를 하셨기 때문에 정산종사께서 숙명통의 혜안으로 이를 증명하고자 주세불로 이런 표현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대각개교의 역설을 깨닫기 위해 가장 먼저 되어야 할 것은 대종사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어떤 소명을 가지고 오셨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종사님은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게 하셨고, 장엄을 배격하셨지만, 저에게 대종사님은 저와 같은 보통 인간으로, 윤회의 대상이 되어 오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대종사님은 우리의 신앙 대상인 일원상과 둘이 아닌 하나로 제 마음속에 깊이 모셔져 있습니다.

교화현장에 있어 보면 교당에 오시는 교도님들이 법신불 일원상에 예를 올리고, 똑같은 모습으로 대종사님 영정에 예를 올리는 것을 종종 뵙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서 신앙의 대상인 일원상과 대종사님이 저분들에게는 하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간혹 대종사님 영정에 예를 올리는 것을 보고서 혹자는 우상숭배라 하고, 혹자는 인격신을 숭배한다고 하고, 혹자는 미신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신성을 배격한 지극히 이성적인 분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믿음과 신성은 이성을 넘어서야 제대로 드러납니다.

먼저 대종사님 존함 즉 법명을 통해 대종사님이 오신 뜻을 찾고자 합니다. 알다시피 대종사님께서 스스로 지으신 마지막 존함이 중빈(重彬)이십니다. 대부분 무거울 중(重) 자로 해석하는데, 여기서는 다시 ‘중(重)’자 빛날 ‘빈(彬)’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종사님의 어릴 때 이름은 진섭이었고, 결혼하여 처화라는 자를 쓰셨습니다. 그러다가 대각을 하신 후 지으신 이름이 重자 彬자입니다. 짐작하기를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은 어떤 소명을 부여받았는지, 당신의 경륜과 포부를 담아서 스스로 작명하였으니 그것이 重彬입니다. 

김형수 작가가 쓴 <소태산평전>과 박용덕 교무님의 <초기교단사>에는 재미있는 글이 실려있습니다. 길룡리 6걸 중의 한 사람인 지관 박윤중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특별하게 아픈 곳도 없었는데 급사를 하였습니다. 자식들은 당시 풍습대로 틀었던 상투의 머리를 풀고 곡을 하면서 집안은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초상을 치르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그 이튿날 죽을 줄 알았던 박윤중이 되살아났습니다. 자식들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윤중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다 내보내고 큰아들 박사인만 남게 하여 독대를 하였습니다.

그는 큰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짜로 죽었었느니라. 문밖에 나가니까 청의동자가 수십 명 나와 있었고 그들이 안내하는 곳으로 다리를 건너갔더니 큰 누각이 나타나고 옥황상제님이 계시는 옥경대가 있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렸더니 '네가 박윤중이냐?'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아직 올 때가 아닌데 왔구나. 너는 돌아가거라.' 하였다. 그런데 이어 말하기를 ‘네가 알아둘 일이 하나 있는데 너희 밀양 박씨 중에 빛날 빈자 두 개를 쓴 이름을 가지는 이가 나올 게다. 그가 천하의 법도를 마련할 대성(大聖)이니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너는 되돌아가거라. 그런데 네가 돌아가고 난 뒤에 다섯째 아들이 오게 될 테니 그리 알아라!’ 하였다. 사실 그때 다섯째 막내아들은 병을 앓고 있었는데, 큰아들에게 박윤중은 명심을 시켰다. 아직 막내가 죽은 것도 아니니 믿을 말은 아니지만, 이것은 천기니 절대 누설해서는 안 된다.”

박윤중의 다섯째 막내아들은 그 이튿날 죽고 말았다. 장남 박사인은 이 이야기를 꼭꼭 감추고 살다가 십 년 후에 박처화가 느닷없이 중빈이라고 개명하자 깜짝 놀라서 일가 어른에게 이실직고하고 도실을 찾아와 그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重彬’이라고 대종사님 자신의 대각에 의해 지은 이름이라면 거기에 필시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다시 重, 빛날 彬 - 이 글자에서 개벽의 의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빛낸다. - 무엇을 다시 새롭게 빛낸다는 것인가. 그것은 불일(佛日)을 다시 새롭게 빛낸다는 뜻입니다. 佛日은 무엇인가? 보통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을 태양과 달에 비유하여 佛日이라고 표현하고, 저는 확대해서 뭇 종교의 참다운 가르침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일증휘(佛日增輝)·법륜상전(法輪常轉)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불일(佛日)은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이며, 또한 참 진리를 말합니다. 증휘(增輝)는 거듭 밝힌다 빛낸다는 뜻입니다. 법륜(法輪)은 법으로 제생의세(濟生醫世)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뜻이며, 상전(常轉)은 쉬려던 법륜을 다시 굴려서 계속 굴러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불일증휘 법륜상전은 변화하는 시대 환경을 따라 이 법이 거듭 밝게 빛나고 법의 수레바퀴가 늘 쉬지 않고 굴러서 불은(佛恩)이 두루 미친다는 뜻입니다.

해방되고, 정산종사는 일제의 간섭으로 어쩔 수 없이 이리 근교 공동묘지에 모셨던 대종사님의 유해를 총부로 운구하여 성탑에 봉안하고 추모비를 세우셨습니다. 이때 추모비의 성비명에 법륜부전(法輪復轉) 불일증휘(佛日增輝)로 표기를 하셨습니다. 법륜상전을 법륜부전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이는 쉬려던 법륜을 다시 굴려주신 새 시대의 새 부처님으로 대종사님을 존숭하는 뜻으로, 법륜부전은 새롭게 다시 본래 자리로 돌이켜 시작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새 부대에 담았다는 뜻입니다.

대산종사는 “불일증휘(佛日增輝)·법륜상전(法輪常轉)은 출가위에서 쓰는 말이고, 불일증휘 법륜부전(法輪復轉)은 여래위에서 쓰는 말이니 서가모니불이나 대종사에 한해서만 쓴다.”라고 하셨습니다. 묵은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개벽의 의지를 담고 있는 중빈(重彬)이라는 이름 속에 불일증휘 법륜부전이 유감없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대종사께서 대각을 하고 시국을 관하며 장차 자신이 전개할 경륜을 계획하면서 스스로 지은 이름, 이 속에는 병든 세상을 치료하고 어둠에 헤매는 생령을 크게 밝고 크게 넓은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 성비에 쓰시기를 '옛날 영산회상이 열린 후 정법, 상법을 다 지내고 계법 시대에 들어와서 바른 도가 행하지 못하고 삿된 법이 세상에 편만하여 정신이 세력을 잃고 물질이 천하를 지배하여 생령의 고해가 증심하였나니 이것이 곧 구주이신 대종사께서 출현하시게 된 기연이다'고 하셨습니다. 

대종사께서 “내가 다생 겁래로 많은 회상을 열어 왔으나 이 회상이 가장 판이 크다”라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은 숙겁의 서원으로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진리의 사도로 오셔서 꺼져가는 佛日을 다시 빛내고 쉬었던 법륜을 다시 힘차게 굴리는 포부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일원의 광명을 다시 새롭게 빛내어 고해에 헤매는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할 개벽의 의지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重. 彬. 이 이름은 숙겁의 서원과 호대한 경륜을 담은 개벽의 표현입니다. 중빈! 이 이름은 일원의 큰 진리를 깨치고 스스로 지은 진리의 이름이며 법의 이름이라고 박용덕 교무님은 초기교단사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용덕, 초기교단사1)

대종사님은 후천개벽시대에 정신개벽의 선구자로 오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중빈이라는 이름 속에는 개벽의 의지가 깃들어 있어, 대종사님은 자신의 법명에 후천개벽의 주세불로 포부와 경륜을 담았습니다.

인문학의 열풍을 일으켰던 건명원 초대원장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우리나라는 종교도 사상도 예술도 문화도 모두가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였기에 어느 것 하나 순수 우리의 것이 없어 늘 외국에 종속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뒤늦게 발견한 유일한 한국에서 태동한 사상이 개벽 사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기 제자를 귀국시켜 개벽 사상에 관해 공부하게 하였으며, 그는 현재 원광대학교 마음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왜 대종사님께서 이 한국 땅에 태어나셨는지, 왜 대종사님께서 한국은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이 될 것이라고 하셨는지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개벽은 우주론적인 차원의 일대 전환적 사건으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는 것을 의미하며, 후천개벽의 시운을 따라 대종사님은 진리의 사도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원불교 최초 성가라고 할 수 있는 불법연구회가가 원기18년(1933) 8월에 처음 가사로 소개되었는데, 송도성, 김기천, 이공주 선진님의 합작품이었습니다. 최초 가사 중에 '삼계변화 이 세상에 연토 따라서 구주이신 우리종사 탄생하시사~' 라고 대종사님은 어떤 분인지? 회상은 어떤 소명을 부여받았는지? 신심과 자부심 그리고 회상의 앞날에 대한 벅찬 희망을 느낄 수 있어서 저는 종종 불러보곤 합니다. 가사 중에는 [전무후무 유일하신 구주]라고 칭송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대종사님은 자신을 신격화하고 장엄하지 못하게 하셨지만 왜 이 표현을 그대로 용인하셨을까를 저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래는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하는 개벽시대입니다. 미래학자들은 지금보다 더 물질개벽 된 세상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인류의 비극이나 종말은 신의 심판이나 자연재해로 오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나 환경파괴에서 오리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물질개벽은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 것입니다. 노예 생활을 벗어나는 미래의 희망은 정신개벽에 있음을 인류가 자각하도록 할 책임이 우리 원불교인들에게 있습니다. 重彬이라는 성함 속에 함축하고 있는 대종사님의 서원과 경륜과 포부를 알게 될 때 원불교열린날은 더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합장하시겠습니다.

 

 

거룩하옵신 법신불사은이시여!

오늘 법회도 “저희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걷기 위해”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자조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의 호조와 
인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에 천조가
함께하여 세계적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시니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를 확인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나이다.

[코로나19]는 많은 교훈을 주고 있나이다.
코로나의 역설을 제대로 깨달아 인류의 앞날에 희망이 열리기를 비오며,
오늘 법회를 봉행하나이다.

영명하옵신 법신불사은이시여!
대각개교의 4월의 하루하루를 그 역설의 의미를 찾고 있나이다.
오늘은 후천개벽의 주세불로 이 땅에 오시어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대종사님은 바로 알고, 깊게 모시고자 하나이다.
대종사님은 다생 겁래로 새 회상을 열기 위해 준비하셨다고 하셨으니
삼계 변화 이 세상에 연토 따라서 구주이신 우리 종사 탄생하셨고, 
[전무후무 유일하신 구주]라고 찬탄한 스승님들의 신심에 하나가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또한, 새로 重, 빛날 彬으로 스스로 지으신 법명에서
불일증휘 법륜부전의 서원과 경륜과 포부를 바로 깨닫게 하시어
대종사님을 후천개벽의 주세불로 모실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4월의 하루하루가 대종사님을 구아주로 구세주로 바로 모시고
심심상련하며 깨달음을 향한 정진의 나날이 되게 하옵소서.

일심으로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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