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진정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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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진정 행복하다
  • 박선국 교도
  • 승인 2020.05.05 11:20
  • 호수 11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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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마음공부9

존 메이는 런던의 한 구청 공무원이다. 그는 20년 넘게 한 가지 업무만을 해왔다. 그는 고독사한 사람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일을 한다. 고인의 연고자나 아는 사람들을 찾아 가능한 한 그들을 장례식에 초대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주 홀로 장례식에 참ㅈ여한다. 빌리 스토크라는 사람의 사망신고가 접수되고 그가 자신의 아파트 바로 맞은편에 살던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 날, 그는 해고통보를 받는다. 빌리 스토크는 그의 마지막 업무 대상이 된 것이다. 그는 빌리의 삶의 흔적을 찾아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게 된다. 드디어 그를 아는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내게 되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조용하고 변화가 없던 그의 삶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 이 영화는 반전이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을 오롯이 즐기고 싶은 분은 영화감상 후 다음 글을 읽어주세요.

감독: 우베르토 파졸리니출연: 에디 마산, 조앤 프로갯
감독: 우베르토 파졸리니
출연: 에디 마산, 조앤 프로갯

'스틸 라이프’는 외로운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주는 일을 하는 한 외로운 남자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화면은 정물화처럼 정지된 듯 우울할 때도 있다. 반복되는 장면은 지루함을 더해주기도 한다. 영화는 산다는 것은 따분하고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통하여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각자의 가치가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주인공 존 메이의 삶은 마치 메트로넘처럼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매일 비슷한 옷을 입고 직장에 출근하여 비슷한 일들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집에 돌아온다. 비슷한 식사를 한 후 비슷한 저녁시간을 보내다가 잠에 든다. 그것은 어찌 보면 절제된 삶을 추구하며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수도사의 삶과도 비슷하게 보인다. 그는 고인들의 추억거리(사진, 편지, 작은 액세서리 등)를 통해 그들의 삶을 재구성하여 추도문을 쓰고 그들에게 적합하리라고 생각되는 장례의식을 치러준다. 그것은 마치 학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를 연구하거나 철학자가 하나의 주제를 고뇌하며 숙고하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타인의 입장에서는 무미건조하고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이나 일들은 존 메이 자신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중요하고도 필연적인 과정이다. 주인공의 삶은 그가 죽음을 배웅해준 다른 무연고자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별 볼일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자세히 그의 삶을 드려다 보면 잔잔한 그의 삶 밑에서는 뜨거운 열정이 넘쳐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지닌 그는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씩 하나씩 들추어내어진 그들만의 숨은 보석 같은 기억들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와 찬란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진첩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수많은 삶을 그들과 함께 경험하고, 그들이 느꼈던 감정을 느꼈으며 그들이 체득한 삶의 지혜를 같이 한 것이다.

존 메이는 해고통보를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묘 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며 하늘과 하나가 된듯한 엷은 미소를 띠우던 그의 이전 모습과 오버랩 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덤덤하고 미련 없는 모습은 득도한 사람의 모습인양 편안하기까지 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의 답답함과 먹먹함 그리고 의문을 일순에 해소시킨다. 아무도 없는 존 메이의 무덤 주위로 환영처럼 하나 둘씩 모여든 사람들. 그가 진심을 다해 떠나 보냈던 사람들이 그를 환송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영화는 말해주는 것 같다. 삶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이며 머물다 또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과 비교하여 결정되는 삶의 가치는 무의미하며 내 삶의 가치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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