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김치로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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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김치로 나를 만나다
  • 김관진 교무
  • 승인 2020.05.05 12:27
  • 호수 11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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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문답감정7

일기 손님이 와서 식사를 준비했다. 갑자기 온 손님이라 그냥 간단하게 봄나물에 국을 내었다. 무슨 이야기 끝에 “저는 음식에 취미가 없어요” 하고 일어서는데, 밥하기 싫어하는 14살짜리 아이가 보인다. 최근에 내면 아이 대면하는 영상을 본 탓인가. 평소 불편한 감정은 빨리 털어버리는 편인데, 이번엔 만나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밥하는 시간은 늘 걱정스런 시간이었다. 식당일을 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없다. 밥이 질거나 되거나, 국이 짜거나 싱겁다. 좀 잘 한 날도 있었을 텐데, 칭찬받은 적이 없다 보니 좋은 기억이 없다.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는 걸 보는 행복으로 즐겁게 요리하는 사람을 보면 참 멋있고 좋아 보인다. 농담 반으로 “저는 요리에는 취미 없고, 뭐든 맛있게는 먹을 수 있어요” 하며 웃곤 하지만, 묘하게 다른 사람은 멋있게 보이는 부엌일이 내가 하면 초라하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3년 남짓 만에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한 첫마디가 “나한테 밥하라고만 하지 마”였다. 그래서 그랬구나. 14살 그 아이에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넌 그때 그게 최선이었어. 네 잘못이 아니야. 지금은 그때와 달라졌어. 지금은 편안하게 부엌일을 할 수 있잖아. 지금은 얼마든지 도와주는 분들이 있잖아, 걱정하지 마. 넌 초라하지 않아.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느라 요리법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렇지, 순서만 익히면 괜찮아.’

그렇게 나와 대면한 뒤, 생애 첫 열무김치를 담았다. 처음엔 실패했지만, 3일 뒤 다시 열무물김치에 도전했다. 제법 그럴싸했다. 맛있다고 인정도 받았다. 뿌듯하다. 거봐! 너도 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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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감정 사춘기 중학교 시절, 부모의 품을 떠나 힘들게 부엌살림을 했던 마음의 상처가 성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아 반찬을 만들고 식당일을 할 때마다 초라함과 자신감이 떨어져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됐다.

늘 회피하고 부끄럽게 여겼던 한마음이 밝아져 어린 시절의 그 마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대면하게 되니 원래는 식당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없건마는 어린 시절 힘들었던 경계를 따라 나타났다. 밥 짓고 반찬하고 설거지하는 일을 회피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일어났나니 어린 시절의 그 마음을 대면하고, 보듬어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 주고, 그 마음과 화해를 하고 보니 물김치를 담으며 내가 반찬을 잘못한다는 부정적인 분별·주착심으로부터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됐다.

우리는 과거의 나에 잡혀서 살아가기 쉽다. 내가 경험했던 일상의 경계들이 나의 성격을 이루고 기질을 이뤄 그것이 나인 양 살아간다. 한마음 돌이켜 자성의 원리에 대조해 보면 잘하는 나도 잘못하는 나도 없으며 칭찬 받는 나도 꾸중 듣는 나도 없다. 내 마음의 정도와 환경에 따라 스스로 위축된 상황이기에 세월이 흘러도 그 경계를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물김치 담그는 한 경계로 지난날 마음 깊이 접어두었던 마음이 태양처럼 밝아져 마음의 자유를 얻는 계기가 됐다. 수십 년 전 어린 시절의 자신을 온전히 대면한 용기 있는 공부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마음공부 문답감정/ 김관진 교무
봉도청소년수련원 원장

 

5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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