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넘어선 상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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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넘어선 상실의 이야기
  • 이여진 교도
  • 승인 2020.05.13 12:23
  • 호수 11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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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가족이라는 정겨운 울타리를 맺게 되는 첫 단추는 결혼이다. 그리고 그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남녀의 삶과 인생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름, 그것은 바로 부부이다.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이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만인 앞에서 다짐하고 서약하건만 실제로 부부가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는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마치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처럼 말이다.

○○ 방송사의 ‘부부의 세계’는 2015년 영국 BBC의 ‘닥터 포스터’를 야심차게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국에서도 흥행몰이에 성공한 이 드라마는, 4년 만에 TV에 출연하는 김희애를 전면에 내세워 매회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 방송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의사인 아름다운 아내, 멋진 비주얼에 다정다감한 훈남 남편, 둘 사이의 믿음직한 아들.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의 행복한 모습처럼 이 가정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한순간, 남편의 불륜으로 부부의 관계는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사랑이란 유리그릇처럼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 그토록 믿었던 사랑이 배신으로 변하자 그 사랑은 이내 증오로, 증오는 다시 복수로 이어지면서, 두 남녀는 서로를 지옥의 나락으로 끌어내리려 안간힘을 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결혼은 24만 건에도 못 미치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반면 이혼은 12만 건에 가까운 수치로 역대 최고였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두 부부당 한 부부는 이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 해도 실제 이혼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경제적인 자립이 어렵거나, 어린 자녀들 때문에, 또 이혼이라는 꼬리표를 감당하며 살아가기에 아직 세상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배우자의 바람을, 순간의 실수일 뿐이라고 믿고 싶은 욕구, 그리고 배우자를 잘못 선택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심리에서도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능력 있고 잘 나가던 여자는 주위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을 터, 결혼생활의 낙마에서 오는 이러 저러한 저급한 소문까지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드라마에서처럼, 보통 사람들은 사실이라서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나쁜 습성들이 종종 있으니까.

바람피운 남편은 이혼한 아내에게 고백한다. 그 사랑도 살아보니 별 게 아니었다고, 사랑이 결혼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똑같이 평범하고 시들해졌다고. 사랑은 영원하지도 않고 화수분처럼 무한히 샘솟는 열정이 아니라는 것을, 부부가 두근두근 설렘과 차오르는 열정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이 드라마는 불륜이나 복수를 넘어선, ‘상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복수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파멸에 이르게 한다. 그것은 끊어내야 할 관계에 대한 미련한 집착이고, 가치도 없는 대상을 향해 에너지를 쏟아붓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애증에서 비롯되는 복수로 인해 서로에게 분노의 총구를 겨누고 그것이 일상화되면 복수의 목적도 정당성도 잃은 채, 마치 거울을 바라보듯 서로의 사악해짐은 닮은 꼴이 되어 간다. 드라마의 주제곡인 ‘고독한 항해’처럼 이정표도 없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생은 일그러지고, 결국 남녀 둘 다 패자가 되어 모든 것을 상실해버리는 잔인한 현실과 마주할 것이니, 이제 이 드라마의 결말을 지켜보자.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
서울교사회장

 

5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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