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전주선과 무시선은 어떻게 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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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주선과 무시선은 어떻게 다릅니까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0.05.13 12:37
  • 호수 11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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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19

우리 교법에는 두 가지 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단전주선이고, 또 하나는 무시선입니다. 이 두 가지 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각각의 특징과 그 이점을 알면 수행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먼저 형태적으로 본다면 단전주선은 정(定)을 양성하는 정신수양 과목이고, 무시선은 공원정(空圓正)을 쓰는 삼학병진 수행입니다. 그리고 방식으로 보면 단전주선은 단전에 마음을 주하는 수행이고, 무시선은 아무 데도 주하는 바가 없는 수행입니다.

단전주선은 마음을 더할 나위 없이 텅 비고 고요한 자리에 머무는 수행입니다. 누구든 마음을 온전히 단전에 주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일체의 사량분별이 다 끊어집니다. 그래서 평소 무슨 이유로든지 번뇌가 많은 사람에게는 망상분별을 끊는 데에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단전주선은 이렇게 일체의 생각을 쉬고 지극히 공적(空寂)한 경지에 머무는 선입니다.

저의 체험으로 이 단전주선의 진행 과정을 보면, 마음을 오롯이 단전에 집중하여 그 정도가 깊어지면, 의식을 뺀 나머지 다섯 가지 감각이 점차 사라집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청각이 닫히고 온몸의 감각이 다 사라지면서, 주위의 모든 경계가 끊어지고 완전히 적막한 상태에 이릅니다. 이 상태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지각도 없고 일체가 한없이 적막할 뿐으로, 오직 의식만 홀로 깨어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마음으로부터 빛이 발하여 온통 주위가 눈부시게 밝은 빛으로 싸이는데, 이때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느껴집니다.

이 상태를 우리 좌선법에서는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원적무별(圓寂無別)한 자리에서 다시 없는 심락(心樂)을 누린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오직 한 곳에 집중하여 이러한 경지를 얻는 것을 남방불교에서는 사마타 수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수행에는 한 가지 결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텅 비고 고요함[定]만 있을 뿐, 자성이 가지고 있는 밝고 두렷함[慧], 즉 공적영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수행은 주위가 모두 끊어진 채로, 오직 고요함 속에만 머물게 되기 때문에, 선종(禪宗)에서는 이를 무기(無記), 혹은 죽은 선[死禪]으로 비판해왔습니다. 실제로 단전주선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경계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수양 외에 사리연구와 작업취사 과목을 함께 두고 있습니다.

무시선은 우리 자성에 있는 공원정(空圓正)의 특성을 사용하는 삼학병진 수행입니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과 어리석음과 그름이 없다’는 법어처럼, 우리 자성에는 원래부터 공원정의 특성이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어디에도 물듦이 없는 이러한 자성의 본래 특성을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공부가 무시선입니다.

수행자가 일상의 경계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때에, 안팎으로 투명하게 오롯이 깨어있게 되면, 아무 데도 주한 바 없는 마음[공적영지]을 쓸 수 있어서, 경계에 끌려가 속박되지 않습니다.

이 무시선법은 과거 부처님이 닦은 위빠사나와 그 수행 원리가 같으며, 일상에서 동정(動靜)에 상관없이 주한 바 없는 마음으로 자성의 공원정을 나투어 씁니다. 무시선법은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은데, 그 요점을 알아서 안으로 한번 체험을 하면 누구든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라도현<br>​​​​​​​화정교당 교도
나우의 공즉시색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5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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