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나를 위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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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나를 위한 위로
  • 우형옥 기자
  • 승인 2020.05.13 13:37
  • 호수 11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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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 태릉교당 하영선 교도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씻겨서

새 옷을 싸악 입혀드리면, 얼마나 뽀얗고 이쁘신지 아세요?

힘은 엄청나게 드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얼마나 이쁜지,

그 맛에 다녔어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자 그는 함박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글쎄요. 딱히 목표랄 게 있을까요. 몸이 허락하는 한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교당 다니며, 웃고, 봉사하고. 항상 하던 대로요.” 매년 서울봉공회 자원봉사자축제 수상자 명단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 봉공이라면 언제나 앞장서 실천한다는 태릉교당 봉공회장 능타원 하영선(74) 교도를 만났다.

나는 원불교인 새벽 4시 30분. 5시에 시작하는 원음방송 기도 시간에 맞춰 일어나 1시간 동안 심고와 기도를 올린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면 쉼 없이 청정주를 왼다. 봉사활동을 가고 교당에도 갔다가 집안일에, 손주도 돌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잠들기 전 저녁 심고까지 바쁜 하루가 끝났다. “젊었을 적, 이웃사촌이 ‘중화교당이 새로 생겼으니 한번 가보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법설이 너무 좋았어요. 그 길로 교당에 다니고 있죠.”

‘모든 종교는 하나다.’ 그가 처음 교당에 가서 들었던 설교 내용이다. “예수님에 대한 교무님의 칭찬이 인상적이었어요. 교회에 갔을 땐 무조건 하나님만 믿어야 한다고 강요했었는데, 원불교는 이웃종교에 울이 없는 거죠. 대종사님 법이 좋아요.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않고 신분도 성별도 따지지 않고 모든 생명을 품는다고 할까요?”

원기62년, 그는 모든 것을 품는 원불교에 매력을 느껴 교도가 됐다. 그는 항상 들고 다니는 핸드폰 케이스에서 신용카드와 함께 꽂혀있는 입교증을 꺼내 보여줬다. 입교증을 집에 두지 않고 왜 들고 다니냐는 물음에 그는 너무도 당연한 듯 답했다.

“내가 원불교인이니까요!”

딸의 출가 그의 딸은 강남교당 김도연 교무다. 원불교 교법대로 살아온 그이지만 큰딸이 출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제가 딸에게 못해준 게 많아요. 고등학교 3년 내내 반에서 1등을 했는데 대학을 못 보냈어요.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그때만 해도 제가 여자는 결혼하면 되고, 남자는 직장을 다녀야 하니까 대학까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죠. 은행에 바로 취직해서 일하더니 자기가 번 돈으로 대학원까지 나왔어요. 이렇게 똑똑한 딸을 바로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게 제일 후회하는 일입니다. 집 때문에 고생한 우리 딸, 학교 선생님이 됐으니 이제 우리 딸도 고생 그만하고 평범하게 살았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출가를 하겠다고 하니…. 선뜻 마음이 나지 않더라고요.”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딸의 확고한 진심에 그제야 딸의 새로운 길을 응원했다. 법신불 사은의 법을 전하는 딸. 이제는 평생 같은 법을 배우고 따르는 든든한 도반이자 스승이 됐다.

봉사로 얻는 깨달음 교당 일이라면 고추튀각도 튀기고 감자튀각도 튀기고 교당 점심 준비에, 청소에 군데군데 손이 필요하다는 곳은 모두 달려갔다. “돈으로는 교당에 도움을 많이 못 주니, 내 몸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은 정말 열심히 했어요. 힘닿는 대로 했죠. 그러다 보니 봉공회장만 십수 년째 하고 있네요.”

인터뷰 날에도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원광장애인복지관에 봉사를 나갔을 판이다.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으며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봉사였어요. 봉사를 다니니 힘들기보다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옛날에는 ‘왜 나만 맨날 힘들까? 못 살까?’ 불평하며 사람들을 올려다만 보고 살았는데 봉사로 인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도울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에 위로를 얻었어요. 남을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봉사를 하며 제가 많이 깨닫는 걸요.”

발바닥이 불나도록 봉사하며 산 지 20년. 봉공활동을 하며 힘든 점은 없었는지 묻자 오히려 그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못하는 노인목욕봉사 얘기를 꺼내며 그 보람을 전했다. “있잖아요.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씻겨서 새 옷을 싸악 입혀 드리면, 얼마나 뽀얗고 이쁘신지 아세요? 힘은 엄청나게 드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얼마나 이쁜지…. 그 맛에 다녔어요. 그리고 함께 봉사하는 도반들이 있잖아요. 같이 하면 하하, 호호 얼마나 재밌게요.”

운동 삼아 천천히 걸어 다녔던 교당 가는 길. 코로나19로 인해 쉬다 대각개교절 법회로 오랜만에 교당을 다녀온 그는 수천 번은 걸었을 이 길이 새삼 감사하다. “꼼짝도 못해 보니 알겠어요.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말씀이 아주 딱 맞아요. 일상의 소중함을 얼마나 깊이 느꼈는지…. 그래서 매일 기도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다 화합하고, 건강하게 살게 해주세요. 이 나라도, 세상도 평화롭게 해주세요.’ 내 주변 사람들의 일상이 지켜지고 무탈하길 기도한다면 그것이 또 커져서 대한민국도 세상도 무탈해지지 않을까요?”

모두를 껴안는 법이 좋아 원불교에 입교했던 그는 부처 같은 웃음으로 모두의 평화로운 일상을 돕는 진정한 봉공인이 됐다.

 

5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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