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산 전성완 원정사 전 고사②] 당신은 저희에게 하늘이고 땅이고 바다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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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 전성완 원정사 전 고사②] 당신은 저희에게 하늘이고 땅이고 바다이셨습니다
  • 전종호 교도
  • 승인 2020.05.16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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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 전성완 원정사 열반

아버지!

가시던 날 목련꽃 하얗던 세상이 이젠 철쭉꽃 알록달록한 세상이 되어있네요. 세상은 이렇듯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변해 가는데 제 가슴속에 남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왠지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깊어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이렇듯 다정하고 포근하고 자애롭고 가슴 저며 오는 단어가 이젠 심중에만 담겨 밖으로는 나올 수 없는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오늘 이제 마지막으로 제 가슴속에 담겨 다시는 부를 수 없는 아버지를 맘껏 불러보려 합니다.

아버지!

당신은 저희에게 하늘이고 땅이고 바다이셨습니다. 그 품이 너무도 넓고 크기에 저희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 세상에 맘껏 뜻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세상 어디에 간들 아버지께서 항상 같이 하실 거라는 거대한 믿음이 언제고 어디서고 자신감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곁으로는 표현은 작고 엄하셨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자애롭고 부드러운 분이셨습니다. 언제 한 번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적도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주신 적도 뜨거운 가슴으로 포근하게 안아주신 적도 없지만, 그저 곁에서 지긋이 바라봐 주시는 눈길만으로도 우리는 염화시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소중했던 눈길들이 이제는 기억의 편린으로 남아 조각조각 꿰어 맞춰야 하는 아버지와의 추억들로 하나둘씩 피어오릅니다.

아버지께서 일과를 마치시고 집에 돌아오실 때쯤이면 어린 저희 남매들은 아버지가 오시기를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돌아오신 아버지께서는 저희 남매를 하나씩 일일이 태우시고 원광대를 한 바퀴씩 태워 주셨습니다. 저녁이 되면 저희 남매들이 둘러앉아 아버님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럴 때 아버지께서는 저희에게 항상 꿈을 심어 주셨습니다.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고시에 거듭 낙방을 하고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가게 되어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을 때, 경북 영천까지 오셨을 때도 아버지께서는 그 흔한 ‘건강하게 마쳐라’든지 ‘조심하라’든지 하는 말씀 한마디 없으셨습니다. 그저 지그시 훈련소 정문을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만 봐 주실 뿐이었습니다. 제가 군 복무 중에도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그 먼 전방 대광리까지 오셔서도 아무 말씀 없이 그저 이 자식 잘 지내라는 마음만 주시고 가셨습니다.

이제 저희가 다 자라서 비록 완벽하지는 못할지라도 지금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때 아버지의 그 다정한 말씀과 행동을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온 결과인 듯합니다. 특히나 이 못난 아들이 살면서 그 많은 실패를 거듭할 때도 질책 한 번 하지 않으시고 그저 보이지 않는 믿음의 기운을 주셨기에 포기하지 않고 오늘날 늦은 나이나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연과 함께하시기를 무척 즐기셨습니다. 사시던 집에는 항상 정원을 가꾸셔서 집안 가득 봄이면 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산새가 날아와 지저귀고, 가을이면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장식할 수 있었지요. 자연석으로 꾸민 집 앞 정원에서 만발하던 철쭉이 이제 아버지를 기억하며 온 세상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 가신 후에도 분재와 난으로 가득한 집은 비록 흙 밟히는 정원보다는 못하였지만, 자연의 품속에 살아가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봄이 되면 아버지와 같이 꽃씨를 심던 일도 여름이 되면 전지가위를 가지고 정원을 손질하던 일도 정원 한가운데 아담하게 분수를 만들던 일도 식물들 겨울을 나라고 마당 가운데에 온실을 만들던 그 즐겁던 기억들이 이젠 형체는 사라지고 없지만, 아버님과 함께 제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벽화가 되어 장식되어 있네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만능 기술자이셨습니다. 집안에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일들을 혼자 손수 힘으로 해결해 내셨습니다. 전기공사며 토목공사며 목공일이며 그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산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저에게는 완벽한 과외선생님이셨습니다. 모르는 어떤 것을 들고 가도 척척 답해주시던 훌륭한 선생님을 모시고 저는 평생을 살아가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의료인의 길에 접어든 지 어언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제 몸이 아프면 먼저 본능적으로 아버님을 떠올리는 저를 보면서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교육자이시면서 또한 배우는 자세를 한시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70이 훌쩍 넘은 연세이시면서도 새로이 컴퓨터를 배우셔서 젊은 사람들도 하기 쉽지 않은 가족신문을 만드셔서 매달 집안 모두에게 배포해 주셔서 가족 모두가 서로의 소식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듯 아버님께는 평소 강조하신 가족 간의 우애와 화합의 기틀을 몸소 만들어주셨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지시기 전까지 집에 가면 항상 책상에 앉으셔서 무언가 작업을 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눈앞에 선 합니다. 이제 주인을 잃고 안방 한쪽에 동그마니 놓여있는 의자와 책상 컴퓨터를 보면서 어디엔가 남겨져 있는 아버지의 자취를 또 그리워하겠지요.

아버지!

아버지가 그렇게 바라시던 법관이 되지 못하고 늦은 나이에나마 한의사가 되어 제가 아버님께 여쭈었었지요.

“아버지, 제가 법관이 못되고 한의사가 된 게 어떠세요.”

아버지께서는 짧게 답해주셨습니다.

“요즘 변호사도 어렵다더라.”

아버지께서는 제가 평생 화두로 삼던 저의 삶의 굴레에서 이제는 벗어나라고 하신 말씀이시라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자식 중에 교당에 충실하지 못한 제가 끝내 안 미더우셨던지 저에게 손수 호를 지어 주셨습니다.

‘심산.’

더 깊이 마음공부 생활 공부 인생 공부하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

매주 침상에 누워계신 아버님 뵈옵고 올라올 때마다 조금은 더 같이 있다 가시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지만, 아버님께서는 이제 이승과의 이별이 준비가 다 된 듯 홀연히 피안의 세상으로 가시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가시고 나면 세상이 무너지고 저의 존재도 의미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남겨놓으신 자취가 너무도 크고 넓고 깊어서 죽음이라는 것도 그저 한세상 거쳐 가는 윤회의 과정이라는 사소한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동하신 한 순간 한 순간 말씀하신 한마디 한마디 그 큰 뜻 어찌 저희가 다 받들 수는 없겠지만 그 족적 따라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에 힘쓰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지금쯤이면 다음 생 맞이하실 준비가 다 되셨을 듯합니다. 이제 낡은 육신일랑 훨훨 벗어 던지시고 어버지께서 정성 들여 가꾸신 정원에 새싹이 피어났듯이 새로운 몸 받으시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시어 아버지께서 그리도 염원하시던 성불제중의 길을 다시 걸으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아버지!

밤새 불러본다고 어찌 그 그리운 마음 덜어질 수 있겠습니까만 이제 이승에서 마지막 간절한 마음으로 한 번 더 불러보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합니다.

진정코 고맙습니다.

아버지---

# 이 글은 소태산 대종사의 친견제자 [로산 전성완 원정사]가 원불교 회상에 입문하여 평생을 전무출신에 버금가는 정신으로 공부와 사업에 힘쓰다 지난 3월 25일 97세의 일기로 열반하자 49일 동안 자녀손과 동지들이 올린 고사와 추모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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