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머니], 너무 늦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받아야 할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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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머니], 너무 늦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받아야 할 사과
  • 김화이 객원기자
  • 승인 2020.05.20 21:00
  • 호수 11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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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산책5
[꽃할머니], 권윤덕 글.그림사계절, 2010
[꽃할머니], 권윤덕 글.그림
사계절, 2010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면 좋겠어요. 솔직히 지겨워요. 그 정도 했으면 된 거 아닌가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평소 말이 잘 통했던 그가 ‘일본 위안부 사과 문제’에 대해 이토록 냉담한 태도를 보이다니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놀랐습니다. 그 놀라움은 곧이어 제게도 작은 파문을 일으킵니다.

‘과연 나는 낯빛을 붉힐 만한 자격이 있나?’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를 다시 꺼내 읽으며 왜 사과 요구를 그만두면 안 되는지, 왜 그 오래된 일을 계속해서 환기시켜야 하는지 되새겨봅니다.

꽃할머니가 열두세 살 무렵, 일본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물을 캐 죽을 쑤어 먹었고, 그날도 꽃할머니는 언니와 함께 나물을 캐러 나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 트럭이 다가오더니 꽃할머니와 언니를 끌고 갑니다.

꽃할머니는 태평양전쟁 시기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겁니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군인이 줄을 서서 꽃할머니의 몸과 마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몇 해가 흘러 전쟁은 끝났고, 꽃할머니는 그대로 전쟁터에 버려졌습니다. 이후 누군가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할머니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초를 겪은 탓에 20여 년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한 이 책은 한중일 공동기획으로 발간됐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위안부’ 문제를 부정합니다. 인간의 기억은 완전할 수 없으며 공식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이대면서 말이죠.

역사는 반복됩니다. 아프고 슬픈 역사일수록 더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겠죠.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하려는 노력과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닐까요.

 

5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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