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산 전성완 원정사 전 고사④]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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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 전성완 원정사 전 고사④]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
  • 전종규 교도
  • 승인 2020.05.22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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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아들 전종규 교도/ 분당교당

아버지가 자랑하는 걸 잘 보지는 못했는데

할아버지가 불법연구회 창립 발기인 7인에 속했다는

얘기를 하실 때는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고 몇 번이나

그 말씀을 하실 때는 무척 즐거워하셨습니다.

 

대산 종사님이 상사원에 계실 때 인사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앞에 상사님 차가 천천히 가고 있어서

옆으로 추월하려 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신성으로

차를 타고도 앞질러 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초등학교 때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건 자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꿈을 꾸는 거였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공포감을 느끼며 눈시울을 적시며 잠에서 깨곤 했습니다. 이미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저에게 너무도 큰 존재였기에 그러한 꿈을 꾸고 상실감에서 괴로워하곤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그런 고민을 얘기할 수 없었던 저에게 양산 종사님이 쓰신 인과의 세계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라 예화 위주로 읽었지만 죽음 뒤에도 윤회가 있어 끝이 아니란 걸 알게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다시 돌아오시겠구나 하면서 아버지를 잃어버리는 공포감에서 벗어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말씀을 많이 하지는 않으셨지만 자상하셨습니다. 제가 노래를 못한다고 초등학교 때 몇 달 동안 아침마다 고향의 봄으로 노래를 지도해 주시고 그래도 안되겠던지 같은 계모임을 하셨던 박성전 선생님께 부탁하셔서 아침 일찍 등교해서 노래 수업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설날에 제가 영화 귀타귀를 보고싶다고 하자 전주에 있는 영화관에 갔는데 버스 타고 터미널에 가서 시외버스타고 전주까지 간 다음 다시 한참을 걸어서 영화를 보고 돌아왔으니 다리도 불편하신 아버지가 많이 힘드셨을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편도선 수술을 받게 되어 국소마취로 입을 벌리고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 지금 생각해도 무서운 수술을 받을 때 수술실에 아버지가 보고 계신다는 사실 하나로 무서움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셨다면 수술 받다가 걷어차고 나오고 싶을 만큼 힘든 수술이었지만 아버지가 보고 있다고 생각만 하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항상 든든하고 힘이 되는 아버지였기에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작은아버지 뒤를 이어 법대에 가서 법조인이 되고 싶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둘째 형이 고대 법대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이제 우리 집안에 법조인이 나왔으니 저에게는 의대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육법전서에 밝으셔서 법률 상담을 많이 해 주시고, 작은 아버지가 검사를 하시고, 아버지가 서울 법대에 다니시다가 가정 형편 때문에 법조인의 길을 포기하신 걸 알고 있어서 아버지의 포기한 꿈을 대신 이루어 드리려 했기에 아버지 말씀이 당시엔 무척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의사가 되고 보니 매일 누군가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아버지가 갖게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하고 싶어 하시던 두 가지를 못 들어 드린 게 가슴 속에 큰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운전을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팔봉 공설운동장 앞 공터에서 제 차로 운전 연습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해서 운전을 배울 수 없고 학원을 다니셔야 되는데 학원을 모시고 다닐 수도 없고 연세도 75세 정도였을 때여서 운전 면허를 따는게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도와드리지 못한 한이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남아있습니다. 20년도 더 지났지만 항상 성묘하러 가는 중에 공설운동장 앞을 지날 때면 운전 연습을 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고 소원을 들어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적 열병을 앓고 나서 한쪽 다리에 장애가 와서 평생을 불편하게 사셨습니다. 평소에 내색을 하지 않아서 몰랐지만 아버지도 정상적으로 걷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레지던트 때 수술이 가능한지 물어 보셨는데 연세 70에 수술과 마취에 대한 위험도도 있고 당시 수술법이 정착되기 전이라 권할 수가 없었습니다. 20년이 지나고 정형외과 교수에게 현재는 수술이 가능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현재는 70세는 전혀 수술과 마취에 문제가 되는 연세도 아니어서 지금 같으면 수술을 받게 해드렸을 텐데 하는 회한이 남습니다. 다음 생에는 부디 불편한 곳 없이 건강하신 몸으로 많은 사업을 할 수 있길 축원드립니다.

척추관협착증이 있었는데도 별로 힘들지 않다고 하셔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신경학적 증상이 생겨서 수술을 해야만 했을 때 수술을 담당했던 신경외과 노교수님이 평생 이렇게 심한 척추관협착증은 처음 본다고 하셔서 아버지가 얼마나 참으셨을까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힘들지 않은 게 진정 힘들지 않은 게 아닌데 그걸 몰랐으니 저의 무관심에 너무 죄송했습니다.

아버지는 설 명절 때 저희가 세배를 하고 나서 항상 법담을 해 주셨습니다. 저희 자녀, 손주 모두 앉아서 아버지가 해 주시는 인생의 지혜를 밝혀주는 법담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작년 설 명절에 금년 운수를 보니 대운이 있다고 하시면서 원래 죽는게 가장 좋은 운이라고 하시면서 생사를 초탈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해가 지나 열반에 드시고 보니 작년 대운은 미경(법명 혜봉)이가 전무출신 서원을 하고, 큰형이 교도회장이 되고, 희용이 결혼, 미현이 결혼, 준우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등의 실로 대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들을 좀 더 즐기고 가시면 좋았을 텐데 즐기는데 익숙하지 않으시고 다음 생의 공부 사업과 중생 제도 같은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서둘러 가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원불교와 스승님들에 대한 한결같고 변함없는 신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대종사님 추모담을 하실 때면 교도들에게 그 때마다 필요한 당부를 하곤 하셨습니다. 저희 대원회에 와서 하실 때는 아버지가 가시고 나면 아버지 추모담을 들은 대원회원들이 대종사님 모습을 얘기해야 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들은대로 제대로 못 전할까 봐 걱정도 했는데 유튜브에서 아버지가 직접 하시는 추모담을 누구나 볼 수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자랑하는 걸 잘 보지는 못했는데 할아버지가 불법연구회 창립 발기인 7인에 속했다는 얘기를 하실 때는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고 몇 번이나 그 말씀을 하실 때는 무척 즐거워하셨습니다. 대산 종사님이 상사원에 계실 때 인사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앞에 상사님 차가 천천히 가고 있어서 옆으로 추월하려 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신성으로 차를 타고도 앞질러 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새벽 기도하시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방에서 자다가 새벽에 소리가 들려 깨어 보니 아버지가 저희 형제, 손주뿐 아니라 사촌 형제, 손주들까지 이름 한 명 한 명씩 호명하시면서 각자의 상황에 맞는 원이 이루어 지도록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너무도 간절한 기도를 들으면서 우리 자손들이 각자 큰 어려움없이 잘 풀리고 있는 것이 아버지 기도의 위력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저희 생일날이면 아침에 전화를 하셨습니다. 우리가족 생일이면 아침 7시쯤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당연히 아버지 일거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생일날 아침에 "영태야 오늘이 네 생일이구나. 축하한다"라며 축하해 주시는 아버지 전화를 받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슬픔이 북받쳐 오릅니다.

아버지

이제 아버지 열반을 당하고 보니 어릴 때처럼 무섭고 두렵지는 않습니다. 비록 아버지 색신을 직접 뵙지는 못하여도 동영상으로 아버지 강연과 인터뷰를 볼 수 있어서 저희에게 너무도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기도와 정진으로 피안에 잠시 쉬셨다가 새 세상에서 성자의 길을 가실 걸 믿기에 너무나 큰 슬픔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라게 해 주셔서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사드립니다. 항상 아버지의 거룩한 모습을 가슴에 간직하고 본 받으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 글은 소태산 대종사의 친견제자 [로산 전성완 원정사]가 원불교 회상에 입문하여 평생을 전무출신에 버금가는 정신으로 공부와 사업에 힘쓰다 지난 3월 25일 97세의 일기로 열반하자 49일 동안 자녀손과 동지들이 올린 고사와 추모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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