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산 전성완 원정사 전 고사⑦] 그리운 나의 할아버지,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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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 전성완 원정사 전 고사⑦] 그리운 나의 할아버지,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 준우 교도
  • 승인 2020.05.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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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외손자 준우

할아버지 영전에 바치는 작별의 편지

할아버지!
오늘 할아버지께 제를 올리기 위해 북일교당에 오는 길에 저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이 깃든 신동 옛집 터를 찾았습니다. 동남아파트 사거리를 지나 언덕을 내려오면 돌담미장원 맞은편에 위치했던 빨간 벽돌집. 익산시 신동 820-28번지. 커다란 초록색 철문이 있던 그 집은 어린 손자가 뛰놀며 동심을 키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곳이었습니다. 매년 봄이 되면 1층 정원에는 각양각색의 어여쁜 꽃이 활짝 피어 있었고, 벌과 나비가 날아들어 하늘을 수 놓던 그곳은 마치 할아버지께서 어린 손자를 위해 마련해주신 불국정토와 같았습니다.

학교를 끝마치고 할아버지를 뵙고자 외갓집으로 달려가면, 현관 바로 앞 좌측 큰 방에 앉아계시던 증조할머니께서는 우리 준우 왔느냐며 장롱문을 열고 모아 두셨던 과자를 꺼내어 주셨습니다. 그 과자를 입에 베어 물고 계단을 올라 2층 안방 문을 열면 할아버지께서는 책상 앞에 앉아 교전을 읽고 계시거나, 취미생활로 즐기셨던 스모경기를 시청하고 계시곤 했습니다. 저는 그런 할아버지 곁에 앉아 할아버지께서 전날 밤 몇 시간에 걸쳐 조립해 주신 레고 장난감을 만지고 놀다가, 할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잠들곤 했습니다.

할아버지와의 그 시절 그 순간을 기억하며 이토록 그리워하는 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가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잠들던 그 옛집은 이제는 애플하우스라는 원룸 건물로 바뀌어 옛날 그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의 외손자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에도,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도 입학과 동시에 가장 먼저 불려 갔던 곳은 교장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그리고 저를 맡으신 담임선생님께서는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준우, 네가 전경진 학장님의 외손자냐”고 물으신 뒤, “너희 외할아버님께서는 정말 훌륭하신 어른이시고 우리는 너희 외할아버님을 너무나도 존경한다”라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수없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이가 연소하여 사리분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철부지 어린아이였지만, 저는 모든 선생님들께서 할아버지의 높으신 공덕을 칭송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한껏 우쭐해지고, 제가 할아버지의 자손이라는 것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곤 했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의 외손자로서 크나큰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유치원 때 익산역에서 파는 우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불편하신 다리를 이끄신 채 저의 고사리 같던 어린 손을 붙잡고 익산역에 데려가셨습니다. 승차권이 없으면 역에 입장할 수 없다며 우리의 발길을 막아선 역무원에게, 우리 외손자가 역 승강장에서 파는 우동을 좋아하니 데리고 들어가서 한번만 먹이게 해 달라고 설득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주시겠다며 직접 교재를 만드시고,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저에게 일본어 교육을 해 주셨습니다. 어학은 반복학습이 최고라며, 만드신 교재를 달달 외우게 하셨던 할아버지. 어린 제가 잘 따라하지 못하자 제가 따라할 수 있을 때 까지 할아버지께서는 교재를 저와 함께 외우고 낭독해 주셨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그 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더 이상 일본어를 배울 수 없게 되자, 할아버지께서는 등하굣길에 틈틈이 보고 공부하라며 손바닥만한 크기의 메모지를 수백, 수천 장 이어 붙여 저만을 위한 단어장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셨던 그 단어장을 다 외우지 못하고 책상 서랍에 묵혀두었던 것이 저에게는 이제 와서 평생의 후회로 남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시험에 수차례 낙방하여 법조인이 되고자 했던 그 꿈을 접어야 할 뻔했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풍전등화와 같던 저의 운명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 주셨던 것은 바로 할아버지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근검절약을 통해 아끼고 모으신 돈 30만 원을 저에게 보내주시며 책사서 공부하는데 보태 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돈을 차마 쓸 수가 없어서 할아버지께서 보내주신 돈 봉투를 붙잡고 죄송한 마음에 펑펑 울었습니다. 한창 일해야 할 30대 초반의 나이에 90이 넘은 외조부님께 용돈을 받는 제 처지가 그때는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매년 합격자 발표하는 날, 저는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항상 총부에 들러 어린 시절 살았던 그 옛날 원상회 옆 집 터를 둘러보고, 대종사님 성탑에 가서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는 그 시간까지 하루 종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제 인생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그 순간에, 저 또한 나약한 중생인지라 대종사님의 크나큰 정법에 스스로를 기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합격 소식을 할아버지께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그 기쁨을 함께 하고자 나선 귀성길이었지만, 매년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저는 할아버지께 인사도 드리지 못한 채, 다시 서울로 발걸음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이런 편지를 남겨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외손자 준우는 보아라, 얼마나 심정이 괴롭냐. 나에게 직접 전화해서 불합격 했다는 말도 못하고 미나를 시켜서 전화를 한 네 괴로운 심정을 알 것 같구나. 그러나 준우야, 가족이란 기쁨만 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괴로울 때나 슬플 때 그것을 같이 나누고 위로받는 것이란다. 네가 내 손을 붙잡고 울었으면 한결 마음이 풀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준우야, 언제까지나 지나간 일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다. 모든 일은 삼시세판이라고 하지 않냐. 지난 실패를 거울삼아 실패의 원인을 반성하면서 기필코 성공을 기약하자.”

제가 결국 합격하여 법조인으로서 굳게 일어선 그날, 할아버지께서는 혹여나 사랑하는 손자가 다시금 고배를 마시게 될까 걱정하시어 전날부터 밤새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제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기뻐하시던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저는 절대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전 가시는 마지막 길에, 철없고 못난 이 손자를 혼자 두고 떠나시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리셨던지,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평생 제 곁에서 제 손을 잡고 함께 할 제 반려자를 맞을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여쭈러 간 그 자리에서 할아버지께서는 저와 혜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마지막 주례사를 해 주시겠다고 하시며, “부부 간에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기 바란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아직 의식이 온전하실 때 남겨 주신 이 주례사가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이승에서 남겨주신 마지막 작별인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할아버지. 다시 한번 그 존함을 불러보아도 가슴 사무치게 그리운 나의 할아버지.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제 곁에 있어서 언제나 행복했습니다. 오늘 제가 할아버지께 올리는 이 작별의 편지는 우리가 마주한 오늘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요, 내생에 다시 만나기 위한 소중한 인연을 준비 하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믿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저의 할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일생동안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고 할아버지의 높으신 정신을 계승하는 자손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혜진이와 서로 앞으로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제 자식들에게도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남겨주신 가르침을 알릴 수 있도록 가장으로서 성실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가시는길 편히 다녀오시고, 할아버지를 다시 뵈올 그날만을 이 외손자는 간절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이 글은 소태산 대종사의 친견제자 [로산 전성완 원정사]가 원불교 회상에 입문하여 평생을 전무출신에 버금가는 정신으로 공부와 사업에 힘쓰다 지난 3월 25일 97세의 일기로 열반하자 49일 동안 자녀손과 동지들이 올린 고사와 추모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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