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 은혜로운 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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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가 은혜로운 교당
  • 한덕천 발행인
  • 승인 2020.06.02 15:40
  • 호수 11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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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_좋은 교당 만들기5

“성인이 나시기 전에는 도가 천지에 있고 성인이 나신 후에는 도가 성인에게 있고 성인이 가신 후에는 도가 경전에 있다”라는 말씀처럼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교전 속에 담겨있다. 그 경전의 말씀을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하는 것이 설교다.

법회는 교법을 종합적으로 체득하는 의식인데 그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설교다. 간혹 “설교시대는 갔다”라고 말하며 설교를 경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교도들은 좋은 설교를 듣고 싶어하고, 좋은 설교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좋은 설교가 없는 교당에 새로운 교도가 인도되지 않을 것이며, 지속적인 성장도 어려울 것이다.

우연히 100세가 된 김형석 철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자신이 일생을 기독교인으로 살게 해준 세 분의 인연이 있는데, 두 분의 목사는 교리를 주로 설교했고, 안창호 선생은 인생을 설교했는데,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은 안창호 선생의 설교였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대면 중심의 설교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디지털시대에는 비대면으로 다양한 설교를 접하기 때문에 준비가 부족한 설교는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보다 더 좋은 설교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이다.

어떻게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을까? 대산 종사의 ‘세 가지 큰 소리’에 대한 법문에서 그 답을 구하고자 한다. 첫째는 마음이 통일된 데서 나온 소리요, 둘째는 마음이 열려 깨친 데서 나온 소리요, 셋째는 몸소 실천한 데서 나온 소리다. 이상 세 곳에서 나온 소리라야 만인을 능히 감동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큰 소리는 기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설교는 말을 잘하는 설교가 아니라 감화와 감동을 주는 설교라고 생각한다. 설령 설교의 기교가 부족하더라도 위의 큰소리는 분명 감동을 줄 것이다. 공감되지 않으면 감동을 주지 않으며, 감동이 없으면 삶으로 체화(體化) 되지 않는다.

 

6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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