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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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 김관진 교무
  • 승인 2020.06.03 09:27
  • 호수 11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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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문답감정8

일기기재

교당에 이것저것 물건을 갖다 놓는 원로교도님이 있다. 이미 교당 창고 절반이 교도님의 물건들로 채워졌던 터라 물건을 가지고 오면 반갑지가 않았다. 하루는 유리병을 갖고 왔다. 지난주에도 더 이상 가지고 오지 말라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는데, 또 가지고 오니 실소가 나왔다.

간신히 마음을 챙겨 장난스럽게 “이건 또 뭣에 쓰는 물건인가요?” 했더니 “살림하는 여자가 그것도 몰라?” 하고 몸을 획 돌린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뭐야, 여지껏 나를 살림하는 여자로 본 건가? 도대체 교무를 뭘로 보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잠깐만요” 하며 원로교도님을 향해 손을 내밀려는 순간, ‘안돼! 멈추고 참아야 해!’ 하는 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다시 ‘아니야 지금 말해야 해. 지금이 아니면 말할 수 없어! 따져야 해!’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교도님을 부르려는 순간,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고, 겨우 돌아섰다. 이런저런 일을 하며 그 일은 잠시 잊었다. 하지만 억울한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소연하고 싶어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어머니는 부드럽게 한마디 한다. “교무님도 살림하는 여자 맞잖아요. 오늘 잘 참았어요”라고 하는데 마음이 수그러들고 수긍이 간다. 그래, 나도 살림하는 여자지. 교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천하농판을 잠시 놓쳤구나.

그렇게 한 주가 지나 다시 교도님을 만났다. “아이고 우리 교무님” 하며 무척이나 반겨 준다. 당신도 내심 마음에 걸렸는데, 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 다행으로 여기신 듯하다.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다시 한번 잘 참았구나. 참고 보니 이 분이 이렇게 살갑게 대하시는구나, 다행이고 감사하다.

문답감정

인지위덕(忍之爲德)이라 했다. 화가 난 마음으로 취사를 했다면 분명 더 큰 갈등과 시비가 일어났을 것이다. 과거에 쌓였던 섭섭한 일까지 드러내 혹 서로 마음의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 분명 교도는 자신이 한 일이 교당을 위한 것이고 공심이라고 주착하고 있기에 어느 어떤 말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내가 문제를 지적하고 시비를 나눌 때 대소유무의 분별이 없는 경지에서 대소유무의 분별이 드러난 법에 바탕한 경지로 온전히 일을 처리했는가를 대조해야 한다.

그 마음을 챙기지 않고 시비를 세우면 말을 해도 안 해도 불편한 상황이 된다. 그러므로 먼저 자성에 바탕해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를 했는가를 공부 삼아, 바른 취사까지 멈추어야 한다.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다. 법에 대조하고 스승과 동지에게 문답하여 나의 정신세력이 확장된 지혜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때로는 이심전심이 되어 저절로 해결되는 이치가 있다.

교당 창고에 온갖 잡동사니를 갖다 놓는 교도에게 조심스레 부탁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또 갖다 놓으니 불편한 마음이 있었고, 마음 챙겨 말했으나 교도의 심기가 불편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똑 쏘아붙인다.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마음을 어머니와의 문답으로 분별주착을 내려놓으니 자성의 지혜가 드러나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교무, 기도하는 교무, 청소하고 빨래하는 교무가 원래는 없건마는 일을 따라 밥 짓고 살림하고 하는 나를 진리에 대조하니 천하농판이다.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출가에 대한 분별과 교무에 대한 상도 자성에 바탕하니, 교무라는 실체는 생각에 있지도 말의 경중이 있지도 아니함을 알아차린다.

김관진 교무봉도청소년수련원 원장
김관진 교무봉도청소년수련원 원장

 

6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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