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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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이다
  • 이여진 교도
  • 승인 2020.06.10 11:12
  • 호수 11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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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과 동남아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길을 물어보게 하고, 한국인이 이들에 대해 각각 어떻게 응대하는지 비교 관찰하는 몰래카메라가 있었다. 우리는 백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반면, 동남아 외국인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게 대한다. 한국인의 묘한 이중성이 느껴진다. 문득 예전에 우리가 선진국에 갔을 때 아시아인이라서, 후진국 국민이라서 ‘그들’로 취급받으며 차별당했던 불쾌했던 기억이 떠올려진다.

우리는 예로부터 단일민족, 순혈주의라는 의식이 유난히 강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문화란 말을 들으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연상하고 우리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다문화가 아니라 우리 한국 사회가 이미 다문화이고, 이제 전 세계가 다문화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섞여 있지 않은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되었을 때 그의 고향인 충주는 세계적 인재를 배출한 자부심으로 들떠 있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중국 허난성의 반씨 집성촌에서도 격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중국의 반씨가 고려시대에 한국으로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세계유력인사까지 되었으니 이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라고 하면서 그들은 자랑스러워했다. 우리나라 성씨는 대략 280여 개가 넘는다. 그중 절반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니 이미 우리는 인종적으로 다문화인 셈이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는 양복, 어머니는 한복을 입고 하객들을 맞이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꽤 익숙하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동서양의 복식이 우리의 예식문화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공주’라고 하면 우리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평강공주도 있겠지만 아마도 겨울왕국의 엘사나 안나를 떠올리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듣고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그리고 이제 K-Pop에 몸을 흔들며 좋아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한국인으로서의 단일민족, 순혈주의는 오히려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방향도 이에 걸맞게 마땅히 변화되어야 한다. 다문화 교육을 한답시고 외국인들에게 억지춘향격으로 한복을 입히고 김치 만들기를 가르치는 것은 진정한 다문화 교육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그대로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할 일은 이 땅에 다양한 문화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공존하도록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이제 다문화에 대해 우리가 지닌 편견을 줄여나가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먼저 다문화라는 용어를 특히 동남아 외국인과 직결시키지 말고, 다문화 교육이 우리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편협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배타성 짙은 우리의 단일의식을 완화하고 민족 중심주의적 성향을 경계하면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하는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한국에 사는 다양한 이주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실제 지니고 있는 불리한 교육여건을 직시하고 그들의 복수적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잠재력에 주목하여 미래사회의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 그래서 그들이 우리사회에 적응하여 우리와 자연스럽게 통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다문화 교육일 것이다.

한울안칼럼
이여진 교도
서울교사회장. 강남교당
 

 

6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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