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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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정형은 교도
  • 승인 2020.06.23 21:03
  • 호수 11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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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영산성지를 다녀온 정형은 교도가 직접 촬영한 대종사님 탄생가.
영산성지를 다녀온 정형은 교도가 직접 촬영한 대종사님 탄생가.

재작년에 원불교신문을 읽다가 눈길을 잡아끄는 광고를 보았다. 제2회 영산성지스테이 모집이다.

원불교 교전에서 처음 원불교 교사(敎史)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도대체 소태산 대종사님은 어떤 분인지, 어디서 자라고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어려웠던 식민지기에 어떻게 교세를 확장하고 열어 가셨는지, 성자는 어떻게 탄생하는지, 이것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 이후 해마다 두 번씩 2박 3일 영산성지 순례를 네 번째 다녀왔다. 이미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는 성지 순례가 교인들의 평생 소원이어서 다양한 순례길을 다니며 믿음을 키우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한다지 않는가. 산티아고 순례길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찾는 명상길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제주 올레길로 새롭게 탄생했다. 우리 원불교 교도님들에게 영산성지는 제법성지 변산, 전법성지 익산, 초선성지 만덕산, 정산·주산종사 탄생지성주성지 등 다섯 성지 가운데서도 근원성지이자 원불교 발상지인 곳이다. 대종사님의 삶을 10상으로 표현할 때 7상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영산이다.

시절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질수록 초심을 돌아보며 갈 길을 찾는다고 하는데 코로나와 문명의 대전환을 논하는 이 시기에 어지러운 구한말 1891년에 탄생한 대종사님의 발자취를 좇는 것은 각별한 느낌과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

영촌 마을의 탄생가는 작년에 재복원되어 네 칸짜리 노란 초가가 우리를 맞이하고, 20년 구도 끝에 대각을 이루신 노루목 대각터는, 1916년 깨달음을 얻으신 그날 동트는 이른 새벽을 떠올리게 했다.

노루목 너른바위
노루목 너른바위

열한 살 때부터 산신령을 찾아 오년간 날마다 오르셨던 삼밭재 마당바위와 구도를 하셨던 귀영바위를 둘러본 뒤, 최초교당인 구간도실을 옮겨지은 영산원에 돌아와 늦은 밤 검은 일원상과 자애로운 대종사님 성안 앞에서 회화와 심고를 올리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빗물을 머금은 꽃나무가 아름다운 영산원 마루에 앉아 우리는 옥녀봉과 구수봉이 솟아있는 구수산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에 젖어들었다. 시간이 멈춘 성지의 그윽한 기운이 편안하게 우리를 감쌌다.

배 타고 임자도로 건너가 대종사님이 가신 탈이섬과 돌아오는 길에 만난 거센 풍랑을 가라앉히고 향한 작도를 본 것은 이번 성지순례의 꽃이었다.

탈이섬
탈이섬

새벽에 백수 해안도로를 따라 정전 108배를 들으며, 걸으면서 절하다가 해돋이를 보며 좌선을 한 것도 꿈만 같다. 정관평 198,347.1m2(6만평)을 일군실사구시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기도하는 주경야독의 정신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이씨제각 앞에 아직 복원하지 못한 최초법어를 설하신 터는 성지에 갈 때마다 안타까워 들르게 되는 곳이다.

멀고 먼 성지순례를 가려고 평생을 염원하는 종교인들이 많은데, 이렇게 가까이에 성지가 있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기획한 왕정달 교무님과 작년에 부산에서 영산까지 일원 깃발을 들고 걸어온 엄인조 교도님에게 감사드린다. 더 많은 교도님들이 영산성지를 돌아보고 성지에서 성지로 순례길을 걸으며 신성을 키우는 날을 고대한다.

정형은여의도교당청소년문화연대 킥킥 대표
정형은
여의도교당
청소년문화연대 킥킥 대표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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