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매미』, 마음을 짓누르는 빨간 매미를 날려보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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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매미』, 마음을 짓누르는 빨간 매미를 날려보낼 용기
  • 김화이 객원기자
  • 승인 2020.06.23 22:26
  • 호수 11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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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산책6
『빨간 매미』 후쿠다 이와오
책읽는곰, 2008년


밤 9시, “자 이제 자자~”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섯 살 아들이 난데없이 대성통곡을 합니다. “엄마, 나 경찰서 가기 싫어 앙앙.” 자초지종을 물으니 종이접기를 하고 싶어 유치원에서 색종이를 그냥 가져왔다나요.

아이의 순수함에 피식 웃음부터 났지만 혹여 잘못을 반복하게 될까 봐, 내일 색종이 갖고 가서 선생님께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라고 차분히 타일렀습니다. 경찰서에는 안 가도 된다는 확답을 듣고서야 아이는 눈물을 그칩니다.

본 사람도 없고, 추궁하는 사람도 없는데 양심 고백할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요.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내 양심은 못 속인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걸까요. 꿈속에서 벌을 받을까 봐 두려웠던 걸까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한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끔직한 하루를 보내야만 했던 『빨간 매미』의 이치가 떠오릅니다.

이치는 국어 공책을 사러 문구점에 갔다가 자기도 모르게 빨간 지우개를 훔칩니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순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죠. 집에 돌아와 새빨간 지우개를 보고 있자니 점점 무서워집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했던가요. 이치는 같이 놀자는 여동생에게 공연히 짜증을 냅니다. 그뿐 아닙니다. 친구와 공원에서 매미를 잡고 놀다가 친구가 문구점 아줌마를 떠올리는 말을 해 애꿎은 매미 날개를 무참히 잡아떼고 맙니다. 급기야 이치는 그날 밤 꿈속에서 문방구 아줌마와 날개 뜯긴 빨간 매미를 아주 고통스럽게 맞닥뜨리게 되는데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잘못을 했으면 반성을 해야지”라는 말을 참 쉽게 합니다. 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어떤가요. 아이의 티끌만한 잘못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한여름 매미 울음소리처럼 큰 자신의 잘못에는 한없이 관대하죠.

어른들이 자신의 거짓말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할 때, 아이들은 거짓말을 고백할 용기를 냅니다. 그 용기를 알아봐주고 보듬어주는 어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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