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이 항상 정을 여의지 아니하여 - 무시선법⑥
상태바
분별이 항상 정을 여의지 아니하여 - 무시선법⑥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0.08.18 22:11
  • 호수 11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우의 공즉시색26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이같이 한즉, 모든 분별이 항상 정(定)을 여의지 아니하여」

여기서 ‘분별’은 나누고 차별하는 그런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원래의 사전적 의미에서의 분별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경계에 끌려 집착하는 그러한 분별이 아니라, 유형무형의 대상에 대해서 육근을 통해 인식하는 그 분별을 말합니다. 분별의 대상은 물질로서는 허공까지 포함하고, 생각으로서는 법(진리)까지 포함합니다. 이와 같은 모든 분별작용이 항상 정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定)은 텅 비어서 한없이 고요한 선정(禪定)의 상태를 말합니다. 즉, 천만 경계에 대하여 분명하고 두렷하게 아는 모든 인식작용이, 늘 선정 삼매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정상태를 떠나지 않는, 우리의 밝고 투명한 인식작용은 곧 성품의 지혜광명(공적영지)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 자성의 혜가 자성의 정을 떠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마음상태가 곧 우리가 지닌 마음의 본래 모습인데, 우리가 기나긴 세월 동안 끝없는 망상과 분별 집착으로 인해서 본래의 모습이 가려져 왔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라는 것이 바로 무시선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정신은 맑고 투명하게 깨어있으며 아무런 잡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운전 중인 자기 자신을 매 순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운전 중에 주위의 모든 사물이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이 운전자는 그것들을 단지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데도 마음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매스게임을 지도하는 체육교사가 연단 위에서 모든 학생들을 바라보듯이 합니다. 어느 한 곳에도 초점(마음)을 두지 않고 전체를 다 볼 수 있습니다.) 운전 중에 주위 상황이 새롭게 바뀌면, 육근작용이 저절로 그에 맞게 반응합니다.

운전자가 이렇게 빈 마음으로 맑게 깨어있으면 그 마음을 성성적적하다고 하고, 매 순간 주변상황에 따라 저절로 육근동작을 하는 것을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운전자의 분별(보고 듣고 느끼고 인식하는 작용)은 운전 중에도 선정(禪定)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나긴 세월 동안 끝없는 망상과 분별 집착으로 인해서

본래의 모습이 가려져 왔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라는 것이 바로 무시선법입니다.

여기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 차를 몰고 어딘가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곳은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주위가 모두 새롭습니다. 그는 차를 운전하면서도 눈은 온통 주변 경치에 끌려있습니다. 의식(意識)은 깨어 있지만 마음이 바깥으로만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육근을 작용하면서도 실은 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깥 경계에 분별하고 주착해 있습니다. 마음이 바르게 깨어있지[惺惺하지] 않은 탓입니다.

또 다른 운전자가 있습니다. 그는 지금 차를 운전하고 있지만 속으로 화가 나 있어서 안정이 잘되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바깥을 향해 있으나 마음은 자신이 화가 난 그 대상에게 가 있습니다. 이 운전자는 비록 육근동작을 하고 있지만, 정작 눈앞의 경계에 그때그때 바르게 대응하지 못해서 자칫 위험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안으로 분별하고 주착해 있습니다. 마음이 고요하지[寂寂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는 오직 자신만 알 수 있습니다. 공부인이 어느 날 자신의 분별이 정(定)을 여의지 않고 있음을 아는 순간이 온다면, 아무도 그에게 무시선법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8월 21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