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기아 없는 그 날까지 ‘제로 웨이스트 제로 헝거’
상태바
전 세계 기아 없는 그 날까지 ‘제로 웨이스트 제로 헝거’
  • 강법진 편집장
  • 승인 2020.09.08 14:42
  • 호수 118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울안이 만난 사람 ㅣ 유엔세계식량계획 임형준 한국사무소장
그의 사무실에는 제로 헝거가 성취된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 걸려있다.강현자, I Love Africa Zero Hunger, 2017
사무실에는 제로 헝거가 성취된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 걸려있다.   
<I Love Africa Zero Hunger> 강현자, 2017作

 

[한울안신문=강법진] 2020년 전 세계 팬데믹을 불러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기후변화가 가져온 인간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안타깝게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와 빈곤, 기아에 더 혹독하다. 올해 4월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유엔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 이하 WFP)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현재 급성기아 인구가 1억3천5백만 명인데 우리가 바로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연말까지 2억7천만 명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대기근(Famine) 상태인 나라가 현재 10개국이지만 이대로 연말까지 가면 20개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최근 기후위기가 가져온 식량위기에 대한 궁금증이 그를 다시 만나게 했다. 2011년 WFP 한국사무소장으로 임명받아 9년째 소임을 다하고 있는 임형준 소장, 그는 “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를 어떻게 보내고 있나
코로나19가 터지기 전부터 세계적으로 2020년을 2차세계대전 이후로 가장 큰 인도적 위기가 올 거라는 얘기가 있었다. 이미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최장의 장마를 기록하며 피해가 적지 않다. 더구나 시리아, 예멘, 남수단 등에서는 계속 분쟁이 일어나고 동아프리카 서아시아는 메뚜기떼들이 출몰해 식량을 먹어치우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헝거 팬데믹까지 불러올 기세다.


최근 WFP 활동에 변화가 있다면
식량을 나눠 주는 형식부터 바뀌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안 되니까 배분 장소와 시기를 늘려서 최대한 감염 위험을차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어린이 3억7천만 명이 초등학교를 가지 못해 학교급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초등학생들에게는 학교급식이 유일하게 그날 하루 먹을 수 있는 밥 한 그릇인데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서 공동분배장소를 만들어 식량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는 어느 정도인가
기후변화와 식량위기는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최근 중미 엘살바도르는 1년에 5개월 정도 오던 비가 2개월밖에 오지 않아 농사 자체를 못 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가뭄과 홍수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한쪽은 물이 넘쳐나고 한쪽은 물이 모자라서 농사 피해가 적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WFP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WFP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올 헝거 팬데믹을 대단히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2014년까지 기아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었는데 2015년부터 다시 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더욱 심해졌다. WFP에서 지난해 1억 명을 도왔는데 올해는 1억4천 명을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도시 빈민, 기아가 늘고 있다.
 

UNWFP에서 18년 동안 활동 중인 임형준 한국사무소장


WFP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벌써 18년이 됐다. 20대 초반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넓은 세계를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아 3년 반 동안 80개국을 다녔다. 그때 몸으로 기아와 빈곤, 인간의 고통에 대해 많은 경험을 했다. 하루는 아주 가난한 마을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들뜬 표정으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줄을 따라 가보니 WFP에서 식량을 나눠 주고 있었다. 그때 받은 충격과 울림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배고픈 사람을 돕는 것이 자리이타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유엔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수없이 낙방했고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으로 경력을 쌓아갔다. 그리고 1999년 6월, 그는 유엔 뉴욕본부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그에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본부가 아니라 현장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도전하는데, 그곳이 당시 코소보 사태로 난민이 많이 발생한 UNDP 알바니아 사무소였다. 그곳에서 인턴을 무사히 마치고 그는 중남미 온두라스, 서아프리카, 라오스, WFP 로마본부 등지를 돌아 2011년 한국에 들어왔다.

탄탄한 경력을 갖춰 돌아온 WFP 한국사무소는 그가 초대소장이 아니었다. 1963년 한국이 대홍수를 겪고 식량위기에 빠져 있을 당시, 정부는 WFP에 긴급식량지원을 요청했고, 그때 WFP가 들어와 1984년까지 우리나라를 도왔다. 한국은 20년 만에 WFP 원조로부터 졸업한 것이다. 그 뒤로 WFP 방콕지역본부에서 출장소 개념으로 2005년 서울에 사무실을 다시 세웠고, 2011년 그가 파견되면서 정식 한국사무소가 개설됐다.


부임 후 9년간 달라진 점은
우리 목표는 제로 헝거이다. 한국은 20년 만에 제로 헝거를 성취하고 지금은 아주 중요한 공여국이 됐다. 내가 처음 왔을 때는 광화문에 아주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곳(서울대학교 우정글로벌사회공헌센터 4층)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9년 전에는 한국이 공여국 순위 50위권 밖이었는데 지금은 11위다. 한국의 위상이 굉장히 높아진 것이다.
 


한국사무소의 중점사업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제로 헝거(Zero Hunger)’다. 2015년 유엔에서 2030년까지 인류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17개의 지속가능한 개발목표를 채택했는데, 그 두 번째가 제로 헝거다. 기아 종식과 식량 안보를 달성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증진하자는 것으로 WFP의 우선 과제다. 이는 기후변화와도 매우 밀접하다. 현재 세계식량이 45억 톤이 생산되는데 1/3이 버려지고 있다. 잘 사는 나라는 식탁에서 버려지고, 개발도상국에서는 생산·저장·수송 과정에서 버려진다. 그 양이면 세계 기아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8%가 음식 쓰레기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플라스틱 줄이는 운동을 많이 하는데 사실은 잔반을 줄어야 한다.

‘제로 웨이스트 제로 헝거’ 캠페인을 실행하면 1석4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우선 식당에서 제로 헝거 메뉴를 만드는 거다. 일반 메뉴가 1만원이라면, 제로 헝거 메뉴는 9천원만 받으면 된다. 먹는 사람은 다이어트를 해서 좋고, 식당은 음식 쓰레기가 안 나오니까 좋고, 그 중에 200~300원이라도 기아 돕기에 쓰이면 나와 식당, 배고픈 사람이 다 도움을 받고 온실가스도 줄일 수 있다. 이 사업을 부산시, 동서대, 아마존과 협력하여 솔루션을 마련 중이다. 어느 조직이든 성장이 목표이지만 WFP는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게 목표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WFP 원조로부터 졸업했고, 지금은 83개국이 WFP의 지원을 받고 있다.


원불교와의 인연
보통 파견을 나가면 한 국가에서 4년에서 최장 6년간 머물 수 있지만, 그는 9년째 한국사무소를 책임지고 있다. 그만큼의 신뢰와 그를 대체할 인재가 없어서다. 전 세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그가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는 원불교의 자리이타 정신과 한 울안 한 이치 한 집안 한 권속이라는 삼동윤리 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틈틈이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명상의 힘’이라고.

세계인들과 상대하다 보면, 정상적인 한국 시간으로는 살 수 없다는 그,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은 전국 일주를 하며 영산선학대와 익산성지를 방문해 혼자 명상에 빠져본다. 누구도 권유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찾은 원불교가 그에게는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청년들에게 “부딪히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쌓고, 목표를 세울 때는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목표를 가지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원불교에서 말하는 ‘서원(誓願)’이 그렇게 다가왔다.

유엔세계식량계획 둘러보기 http://https://ko.wfp.org/zero-hunger

9월 11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