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타인은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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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타인은 바꿀 수 없다
  • 이여진 교도
  • 승인 2020.10.13 15:07
  • 호수 11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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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한울안칼럼이여진강남교당 교도서울교사회장
한울안칼럼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
서울교사회장

직업이 교직이다 보니 학부모와 상담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담에서 그다지 내가 도와줄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타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성향을 지녔다.

“우리 아이가 어릴 때는 정말 공부를 잘했어요. 근데 갑자기 경제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성적이 떨어지더니 이제 회복이 안 돼요. 예전엔 정말 잘했었는데….” 그러면서 초등학교 때 아이가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누구나 리즈 시절은 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현재의 불만족을 보상받으려 하는 심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아이는 고등학생이다. 어릴 때 갑작스럽게 가세가 기울면 아이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학업을 멀리해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학업 의지가 없다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서 학업을 독려해야 할 것이고, 학업 의지가 있다면 아이에게 맞는 학업 전략을 짜서 이제라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끝없이 과거에 빠져 살고 있다. 그리고 아이의 그러한 리즈 시절을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듣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다.

“엄마 말을 정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주위의 나쁜 친구들이 문제예요. 쟤네들과 어울리면서부터 저래요. 쟤네들을 못 만나게 떼어 놓을까요? 아님 달래 볼까요?” 근묵자흑(近墨者黑)이지 않은가. 특히 아이들은 더 그렇다. 그리고 그것이 어디 친구들만의 탓이겠는가. 무언가 서로 통하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서로 어울리고 함께 놀지 않았을까? 자녀의 친구관계를 이제 와서 부모가 무슨 수로 통제하겠는가. 또 어떻게 나의 자식도 아닌, 남의 자식들까지 달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담을 할 때면 정신의학자로 교류분석이론(Transactional Analysis)을 처음 세웠던 에릭 번(Eric Berne)이 말한 ‘과거와 타인은 바꿀 수 없다’는 문구를 인용하면서 대화를 풀어나간다. 사람들은 종종 이미 지나간 과거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후회와 한숨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이제 바꿀 수 없다. 과거에 대한 지나친 후회는 자책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면서 현재의 삶을 축내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것이 쌓여 마음에 병이 되고 몸까지 상하게 한다. 그러니 과거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은 현재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리모델링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만 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우리는 타인을 바꿀 수 없다. 현재 나의 불운과 불행을 모두 타인의 탓으로만 돌리게 되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문제 해결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사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이 하나인 경우는 대단히 드물지 않은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지금 여기 발을 딛고 있는 현재에 충실하고, 남이 아닌 나를 먼저 변화시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종이에 내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적어 보자. 그중에서 내 능력이 닿을 수 있는 것에 동그라미를 해보자. 동그라미 된 것 중에서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것과 시간이 걸리는 것을 구분하고 각각의 내용을 어떻게 해낼 것인지 현명한 방법을 탐색하면서 지금 바로 움직여보자. 그것이 후회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 기운차게 나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다.

 

10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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