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자리이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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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자리이타로
  • 엄익호 수습기자
  • 승인 2020.11.25 19:16
  • 호수 11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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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화두로 삼아 활동해온 지난 세월 동안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혐오’였다. 타자를 향한 무차별적인 혐오 속에서 평화의 목소리는 쪼그라들었고 외연 확장이 매우 어려웠다. 더 절망적이었던 것은 그 혐오의 중심에 청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쟁 등 역사 문제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청년이 역설적으로 그 어느 세대보다도 북한에 적대적이고 통일에도 부정적이었다. 청년 세대가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이 이러니 앞으로 통일이나 평화도 불가능하다는 허망함도 들었다. 그래서 화두는 ‘어떻게 통일을 할까’를 넘어 ‘어떻게 혐오를 줄일까’가 됐다.

혐오를 일삼는 개인에게는 모든 것이 혐오의 대상이다. 날마다 논란이 터져 나오는 이유이다. 특히 착하게 살라는 올바른 소리는 도무지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평소 올바른 삶을 강조한 사람들은 작은 흠에도 더욱 혹독하게 비난당한다. 이렇듯 인간은 타락했고 선행은 위선이 됐다.

이 혐오를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혐오를 극복해야 한다. 원불교 표현으로 이 혐오를 돌려야 한다. 어떻게 돌릴까?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이다. 지금 시대에는 남을 위하자는 얘기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러니 솔직하게 나를 위하자는 얘기부터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입장을 갖는 것에 정답은 없다.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우리에게 이롭기도 했고 해롭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 모두에게 확실한 사실은 좋든 싫든 북한은 우리 동포이며, 지리적으로나 국제정세로나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북한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이다.

우리 동네에 나와 불편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를 외면하거나 내쫓을 수 없는 것처럼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외면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평화와 공존이다. 우리가 왜 북한을 돕겠는가.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다. 세계 평화를 지향하며 맺은 난민협약, 파리기후협약 등이 모두 그렇다.

자리이타로 혐오를 돌리자.

11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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